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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에 파병될 예정이었던 젊은 시절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파병이 취소된 이유는?

ˍ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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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샌프란시스코 프란시스 병원에서 5.2kg의 우량아로 태어난 아기,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기 클린트 이스트우드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이 아이가 특별하게 자라기를 원했던 부모는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괴력의 영웅의 이름을 따서 삼손으로 불렀다. 하지만 부모의 기대와 달리 삼손은 학업에 소홀한 채 각종 아르바이트에만 전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1950년. 갑자기 한국 전쟁에 징집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당시 미국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만에 참전을 결정, 150만 명이 넘는 미군을 파병하려 했고 냉전 시대를 이유로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었기에 20살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징집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의무 복무 기간은 2년이었는데 그는 신병훈련소격인 포트 오드(Fort Ord)에서 기초군사 훈련까지 마친 뒤 한국행 비행기가 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국 전쟁 참전이 취소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수영 선수와 인명 구조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례적으로 기지에서 수영 지도병으로 복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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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참전을 피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행운의 사나이로 불리게 된다. 이후 평일에는 집에서 2시간 거리의 기지로 출퇴근하며 수영 지도병으로 복무, 주말에는 나이트 클럽 경비원 아르바이트까지 한 삼손. 심지어 일요일에는 군 수송기에 숨어들어 시애틀에 있는 승무원 여자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이트 도중 깜빡 잠이 들어 기지로 돌아가는 마지막 군 수송기를 놓치고 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군인 신분이었던 만큼 정해진 시간에 복귀하지 못하면 처벌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런데 군 비행장에서 어쩔 줄 모르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눈에 띈 것. 바로 기지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이륙할 예정이던 폭격기였다.

이 폭격기는 1인승으로 군수품 저장소에는 각종 군수물자와 레이더 등이 실려 있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탑승할 자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타고 난 말솜씨로 설득해 폭격기 뒷공간에 기적적으로 탑승한다. 그런데 행운이라고 믿었던 순간 찾아온 위기. 갑작스럽게 엔진 결함으로 폭격기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조종사가 태평양 한가운데에 비상 착륙을 시도, 다행히 두 사람은 구명 보트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갑자기 거센 파도가 구명 보트를 덮치면서 바다에 빠져버린 클린트 이스트우드. 조종사가 탄 구명보트는 물살에 밀려 점점 멀어졌고 그렇게 그는 망망대해에 홀로 남게 된다.

 

표류 추정 지점은 샌프란시스코 해안가에서 약 5km 떨어진 곳으로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워진 데다 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만약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샌프란시스코가 있는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갈 경우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결국 모든 것을 운에 맡긴 채 헤엄치기 시작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런데 절망적인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그 순간.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 도시의 불빛이 보인 것이다. 그렇게 가까스로 헤엄쳐 해안가에 도착한 그는 구조될 수 있었고 그는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무사히 부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2년 후 복무 기간을 마친 그는 제대했고 경비원과 주유소 직원으로 다시 아르바이트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우연히 포트 오드 기지에서 함께 복무한 동료 척을 만난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리우드에 인맥이 있던 척의 주선으로 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배우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결과는 한 번에 오디션 합격. 그렇게 영화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그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는 극장에 걸리지도 않았던 B급 영화.

게다가 그는 주연도 아닌 조연과 단역만을 전전했다.

 

그러던 1963년. 그는 한 영화의 주연을 꿰차게 된다. 이 영화는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식 서부극으로 저예산에 미국도 아닌 스페인에서 촬영해야 했기에 많은 배우에게 거절당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 이 영화의 제목은 그 유명한 황야의 무법자였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황야의 무법자

1964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개봉한 황야의 무법자는 예상 외 흥행을 기록,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대박을 터뜨렸다. 클린트 역시 이 영화를 기점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한국전쟁 징집에서 제외됐고 추락하는 폭격기 사건, 망망대해에서도 극적으로 살아 남았으며 우연히 할리우드 배우가 된 행운의 사나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후 그는 더티 해리 시리즈 등 총 63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영화감독에도 도전, <용서받지 못한 자>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명감독이 되었다.

 

본인의 경험을 늘 잊지 않으려 한다는 클린드 이스트우드. 폭격기 추락 사고 역시 마찬가지로 2016년 이 경험을 살려 연출한 영화가 바로 허드슨강에 비상 착륙한 여객기의 실화를 다룬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삼손이라 불리며 늘 행운이 뒤따랐던 사나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아흔 살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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