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개봉을 했던 배우 원미경, 김민종, 손숙, 이영하가 출연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964년 성폭행에 저항하던 여성이 남성의 혀를 물어서 절단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는데요. 당시 최말자 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었습니다. 그로부터 56년이 흐른 지금, 부산에서 유사한 사건이 다시금 벌어졌습니다.
한 여성이 성범죄 위협에 저항해서 남성의 혀를 물어버린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차 안에서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한 남성을 강간 치상으로 고소한 여성과 혀를 문 그녀를 중상해죄로 맞고소한 남성.
올해 7월입니다. 부산의 한 번화가, 술에 취해 앉아 있던 여성에게 접근한 한 남성. 그녀를 차에 태우고는 인적이 드문 산으로 향했습니다. 차를 정차한 남성은 만취한 여성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했고 저항하던 여성이 남성의 혀를 물어뜯어 혀 끝 3cm가 절단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 당일 녹화된 차량 블랙박스 파일에 남성의 비명소리가 담겨있었습니다.
사건 이후 남녀는 서로를 고소한 상황입니다. 과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성 측의 변호인을 만나봤습니다.
[여성측 변호인 우희창 : 가해자가 만취 상태의 피해자를 인적이 드문 산으로 데려가 강간하려 했는데 이에 대응해 피해자가 가해자의 혀를 물어 절단한 사건입니다.]
사건 당시 남성이 여성을 차에 태워 데려갔다는 황령산 입구를 찾아가봤습니다.
사건 현장은 인적이 드물어 아베크족(차 내부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지는 남녀) 연인들의 밀회 장소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그날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초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서에서 사건 정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산남부경찰서 수사관계자 : 서면 번화가에서 차를 태워 황령산으로 간 것 자체가 성폭행 시도 의도가 있었다고 그렇지 않았나 생각이 됐고요. 여성이 남성에게 가한 중상해도 어쩔 수 없이 행동하지 않았나 생각이 됐죠.]
지난 7월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왔던 여성. 여행 마지막 날 과음을 하고 만취 상태로 길가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접근한 남성이 의식이 흐릿한 여성을 부축한 채 자신의 차 안으로 데려갔던 겁니다. 혼미한 상태로 차 안에 들어선 여성. 술에 취해 있어서 사건 당시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여성을 자신의 차에 태운 뒤 약 20분 정도를 주행해서 서면 번화가에서 약 10km 떨어진 황령산 입구까지 이동을 한 겁니다.
이렇게 밀폐된 차 내에서 단둘이 있게 된 남녀. 여성은 순간 자신을 추행하는 손길과 입을 맞추려는 기척을 느끼게 됐고 이대로 가다가는 더 큰 성범죄를 당할 우려에 결국 남성의 혀를 무는 방식으로 저항을 하게 됐습니다.
[여성측 변호인 우희창 : 이후에 가해자 남성이 되려 피해자 여성을 중상해죄로 고소했고요. 수사 과정에 가해자의 강간 시도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곧장 경찰서로 찾아간 남성은 여성을 중상해죄로 고소합니다. 이 여성은 성폭행 시도가 있었다며 남성을 강간 치사 혐의로 맞고소하기에 이르러 법적 분쟁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남성은 여성이 자발적으로 차에 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에서 이루어진 입맞춤은 상호 동의 하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여성 측의 주장은 다릅니다.
[여성측 변호인 우희창 : 당시 가해자 차량에 있던 블랙박스 음성 파일에서 피해자가 규칙적으로 '아, 아' 소리를 냈었고요. 그리고 피해자가 짜증이 난 목소리로 '(혀를) 빼라, 빼라, 빼라' 라고 하는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어요.]
그날 있었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렵게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수락한 김지윤(가명) 씨.
[피해자 김지윤(가명) : 그때 솔직히 기억이 아예 나질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제작진 : 술을 많이 드셨나요?]
[피해자 김지윤(가명) : 그날 평소보다 많이 마시긴 했어요.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술을 마셔서 만취한 상태로 모르는 남자가 차에 태운 채 인적이 드문 등산길로 데려가서 강간을 시도한 것 같은데 그때 혀를 깨물지 않고 제가 소극적으로 저항했다면 더 큰 범죄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건의 쟁점은 과연 여성의 저항이 정당 방위에 해당하는지 그 여부입니다. 경찰은 형법 제21조 3항에 의거해 야간 및 불안에 의거해 면책을 내렸습니다.
즉 죄를 묻지 않기로 했지만 혀를 깨문 여성의 저항 자체는 정당 방위가 아닌 과잉 방위라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부산 여성의 전화 상임대표 고순생 : 납득이 전혀 안가는 결과라고 봅니다. 어떻게 그것이 정당방위가 아니며, 또 무죄가 아닙니까? 피해 여성이 차 안이라는 밀폐된 상황에서 술에 취해 있었는데 할 수 있는 저항 수단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런 유사한 사례가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정당방위이며 무죄임을 이끌어내지 않는 한 제2, 제3의 사건들이 우후죽순 생길 겁니다.]
56년 전 성범죄 피해자임에도 유죄로 판결되어서 결국 죄인이 된 최말자 씨가 최근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옳은 판결을 촉구하는 여성단체의 시위도 이어졌습니다.
56년 전 가해자 남성의 중상해죄 고소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최말자 씨. 성범죄를 시도했던 남성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수십년간 가슴속에 품어온 깊은 한. 오랜 세월 묵은 억울함을 풀기 위한 56년 만에 재심을 앞둔 상황입니다.
[56년전 강제 입맞춤 사건 피해자 최말자 : 뭘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의도나 목적은 없어요. 단지 너무 억울한 마음에, 상처를 끌어안고 어떻게 살아 갈 것이지...]
아직도 논란이 이어지는 강제 입맞춤 사건. 과연 피해자를 대변하고 있는지 의문을 자아내는 형법의 정당방위 적용 여건. 여성의 저항이 밤에 이루어졌을 때만 면책되는 이상한 법 규정입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해현 박사 : 방어 행위는 침해된 법익과 그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그 균형이 이뤄지지 않으면 과잉방위로 처벌하겠다는 것인데 처벌되더라도 예외적으로 특수 환경, 야간이나 불안한 상항에서만 예외적으로 처벌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만약 이 피해 여성이 사건 당시 야간이 아니었다면 남성의 혀를 절단한 것이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논리거든요. 그런데 그건 말이 안 되는 판단인 거죠. 굉장히 정당하지 못한 판결이고 결론인 거죠.]
범죄 피해에 직면한 여성들의 스스로 지키려는 불가피한 저항마저 과잉 방위로 치부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요.
[여성측 변호인 우희창 : 법률은 모든 사건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추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론과 판례가 그 간격을 메울 수밖에 없는데요. 이론은 정당방위를 넓게 인정하고자 하는 게 주류로 생각되는데 아직 판례들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 바람은, 법원에서도 방위 의사로써 저항한 것이 드러난다면 수사기관,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했으면 합니다.]
면책 판정으로 불기소 처분된 여성. 추후 재차 법적 분쟁을 앞두고 있어 귀추가 주목됩니다.
[피해자 김지윤(가명) : 우리나라가 조금 정당방위 인정 요건이 좁다보니까 이번 일로 향후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형법 제21조 정당방위가 성립 요건의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나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정당방위가 아니고 과잉 방위로 판단이 내려졌지만 형법 제21조 3항에 따르면 야간 및 불안한 상태였다는 것이 참작이 돼서 직접 처벌은 지금 면한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판결이 날지도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 같고 지금 가해자와 피해자의 법적 분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결과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피해자의 방어 행위를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요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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