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의 압달라 부카람 대통령
1996년 8월 치러진 에콰도르 대선에서 에콰도르 21개 주 중 무려 20개 주에서 승리, 54%의 득표율을 기록해 압승을 거두며 대통령으로 당선된 압달라 부카람.

그는 선거 전부터 기존 정부의 부패를 비난하고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혼혈계 빈민 정책을 내세우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그런데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불과 6개월 후인 1997년 2월 7일 에콰도르 의회는 압달라 부카람 대통령을 탄핵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6개월 만에 탄핵을 하다니, 대통령 당선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탄핵을 당한다? 이유 뭘까요? 주된 탄핵 이유는 바로 그의 흘러넘치는 흥 때문. 아래 동영상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부카람 대통령. https://youtu.be/017KgyHiDJk
선거 유세 당시 압달라 부카람은 우루과이 록밴드와 함께 춤과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배트맨 복장을 하고 선거운동을 하거나 가수, 코미디언들과 유세에 나서는 등 파격적인 선거운동으로 국민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카람 대통령의 넘치는 흥이 에콰도르를 가난의 길로 이끈 주범이 되고 말았는데요.
부카람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앨범을 제작하고 콘서트를 여는 일에 매달린 것. 심지어 칠레에서 열린 이베로 아메리카 회의에서 타국의 대통령들에게 데모 테이프를 전달하기까지. 당시 에콰도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1300여 달러, 당시 한화로 100만 원밖에 되지 않는 중남미 최빈국 중 하나였는데요. 하지만 부카람 대통령은 취임 전 약속과는 달리 긴축 정책을 펼치며 보조금을 삭감하는 것도 모자라 가스요금, 전기요금 등을 300%나 인상. 이에 에콰도르 서민들의 생활은 파탄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자신의 친구들을 국가의 고위 관직에 앉히고 갓 성인이 된 18세의 아들 야코보를 에콰도르 세관의 책임자로 앉히는 등 각종 부정부패에까지 연루됐는데요.

에콰도르의 명예를 떨어뜨린 부카람에게 분노한 국민은 결국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열기에 이르렀고. 에콰도르 의회는 그가 정신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며 그를 탄핵하게 됩니다. 서민들의 생활은 나 몰라라 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열었던 에콰도르의 무능한 대통령 압달라 부카람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우민화정책이라는 말 아시나요?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인데요. 대표적인 게 3S 정책이라고 있습니다. 스크린, 스포츠 그리고 섹스. 여기에 관심을 유도해서 정치나 정책에 대해 무관심을 유도하는 정책이죠. 국민들을 대상으로 우민화정책을 펼친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입니다.

1928년 포르투갈의 경제학과 교수 출신의 정치가가 혜성처럼 나타났습니다. 바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1926년 파시스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지 2년 후 그가 재무장관 자리에 임명되는데요.

살라자르는 정부 지출을 줄이고 국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 공무원의 임금을 동결하며 짧은 시간 안에 국가 재정을 탄탄하게 만들었고 이에 해외의 외신들이 나서서 그의 경제정책을 칭찬하는 기사를 내보냈을 정도. 재무장관에 임명된 지 4년 만인 1932년 포르투갈의 총리에 임명되며 국가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확실히 경제 정책을 잘했고 그 덕분에 정계에 입문한 지 몇 년 안 돼서 국가지도자 최고 자리 올랐는데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자신이 장기 집권을 하는 데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한 끝에 그가 내세운 정책이 바로 우민화정책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노골적인 우민화정책을 펼쳤는데요. 바로 3F 정책. 살라자르의 3F 정책은 축구인 풋볼(Football), 카톨릭 성지를 뜻하는 파티마(Fatima), 전통 민속음악인 파두(Fado)입니다. 살라자르는 이 3가지에 아낌없는 재정 지원을 투자하는데요. 이에 포르투갈 국민들은 축구에만 관심을 쏟고 정치 대신 종교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며 분노와 슬픔은 파두로 해소하게 됩니다.
반대로 그는 국민들의 교육에는 굉장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요. 고등교육기관에는 투자를 거의 끊었고 심지어 포르투갈 국민들의 문맹률이 무려 40%에 육박하게 됐다고 하죠. 결국 노동 생산성은 급락, 경제는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79세의 나이까지 무려 36년간 독재정치를 이어가던 그. 그런데 그의 독재는 황당한 일을 계기로 끝을 맺게 되는데요. 1968년 8월 3일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던 살라자르는 해먹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쳐 의식 불능 상태에 놓였고 한 달 후 부득이하게 해임되며 그의 독재는 마침표를 찍게 됐다고 합니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1965년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1년간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탄압하며 독재를 이어간 그는 1972년에는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 집권을 이어나가려다가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인데요.

그런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치스러운 꼬리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의 대표적인 부패 지도자. 그가 집권하는 동안 부정 축재한 재산은 무려 100억 달러, 한화로 약 12조 원 상당. 사치 끝판왕 이멜다 마르코스가 바로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입니다.

그가 필리핀 재무부에서 빼돌린 돈만 최소 50억 달러에 식품청 예산에도 손을 댔다고 합니다. 스위스 은행에 개인 계좌를 개설, 국가의 돈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 결과 마르코스가 집권하는 동안 필리핀의 경제는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요. 1960년 1인당 GDP가 254달러로 아시아의 부국이었던 필리핀은 1980년대 중반에는 대외 부채가 283억 달러로 급등. 필리핀의 재정은 파탄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는데요.
결국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빈곤국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국민의 지탄과 비판 여론이 거세지며 1986년 민주화 혁명이 발생. 수많은 국민들이 독재 정권 청산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결국 마르코스 일가는 도망치듯 하와이로 망명을 가게 되는데요.

그렇게 그가 대통령에서 쫓겨난 후 필리핀 정부는 부정으로 축재한 그의 재산을 환수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마르코스 일가의 한화 약 280억 원에 달하는 미술품 160점을 몰수하는 등 약 4조 원의 재산을 환수했다고 하죠. 불법으로 축적한 재산을 일부 환수한 건 다행인데 12조를 해먹었는데 4조를 환수했다면 3분의 1 수준입니다.
장기 집권 끝에 권좌에서 쫓겨나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해 온 마르코스 대통령. 그는 1989년 9월 28일 하와이의 한 병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하와이에서 사망후 1989년에서 2016년 까지 방부 처리 후 전시 되었다고 하네요. 12조에 달하는 국고를 횡령해 부국인 필리핀을 동남아 대표 빈곤국으로 만들어버린 필리핀의 부패왕,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였습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을 독재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모자 아돌프 히틀러.

특히 그는 순수한 아리아 혈통만이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 아래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대학살하며 역사상 유례없는 악행을 자행했는데요. 그런데 그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광기 어린 최악의 악행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기공장 프로젝트.
아기공장 프로젝트는 순수 혈통의 아리아 혈통을 대량으로 출산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간 교배장을 만든 것. 생명의 샘이라는 뜻의 레벤스보른을 설립, 독일의 여장교나 가난한 여성들의 자원을 받아 아리아족 남성들과 성관계를 통해 이곳에서 파란 눈에 금발 머리, 큰 체격을 가진 순수 아리아인을 출산하도록 한 겁니다.

마치 아이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처럼 말이죠. 이 시설은 독일뿐만 아니라 점령국인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등 모두 25군데에 달했다는데요.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 아리안의 특성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났거나 몸이 약한 아기는 그냥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나치 교육을 받기 위해 시설에 계속 머물거나 자녀가 없는 친위대 가정에 입양돼 길러졌다고 하죠.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점령국에서 순수 혈통의 아리아족 아이들을 납치, 독일인 가정에 강제 입양을 보내기까지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나서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시설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이 그들의 친부모를 찾지 못했는데요. 전쟁통에 출생 자료를 분실, 소실됐거나 기록을 찾지 못하도록 없애버렸기 때문. 순수 아리아족으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명목 아래 아리아 혈통 아이들을 대량 출산하는 인간 교배장을 만든 독일의 악마 폭군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975년부터 약 39년간 스페인의 국왕으로 재임한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확립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스페인의 민주화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왔는데요.

2007년 가장 존경스러운 스페인인 설문 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의 존경을 받은 그. 그런데 2012년 4월 14일 한 사건을 기점으로 그는 한순간에 추락하고 맙니다. 코끼리 사냥을 하기 위해 보츠와나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엉덩뼈가 부러져 본국으로 후송된 건데요.

불과 몇 주 전에 청년 실업과 경제위기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말한 국왕이 호화스러운 사냥 여행을 즐기러 해외여행을 갔다는 소식에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결국 스페인 국왕 역사상 최초로 대국민 사과를 한 후안 카를로스 1세.
그런데 이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그가 독일인 사업가 자인 비트겐슈타인과 내연관계라는 것.

결국 그는 2014년 6월 2일 스페인 국왕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위하고 마는데요. 그렇게 국왕자리에서 물러나며 조용히 사나 싶었는데 퇴위 후 한 달여 만에 소송에 휘말리게 됩니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자신의 친부라고 주장하는 두 명의 남녀가 등장,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
검찰 수사가 결정되자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도망치듯 고국을 떠났는데요. 그런데 그가 아랍에미리트로 망명을 한 후에도 그에 대한 성추문 폭로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2016년 출판된 책 <후안 카를로스 5000명 연인의 왕>에 따르면 그가 1976년에서 1994년 사이에 성관계를 맺은 여성의 수가 무려 2154명에 이른다는데요.
한편 스페인 전직 경찰청장은 스페인 정보기관이 카를로스 1세의 성욕을 낮추려고 여성호르몬이 포함된 약물을 주사했다고 폭로하기까지. 또한 2021년 12월에는 그가 모델 겸 배우로 활동했던 바바라 레이와 불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스페인 대기업 3곳의 자금을 동원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요.

레이의 입막음 대가로 세 기업이 수년간 그녀에게 건넨 돈은 500만 유로, 한화 약 67억 원 상당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20세기 최고의 괴짜 독재자로 불리는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전 대통령. 그의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 국민은 그가 권력을 잡은 1985년부터 21년간 황당한 나라에서 살아야만 했는데요.

일단 화폐에 자신의 얼굴을 넣는 것은 기본,

자신을 투르크멘의 정신이자 황금시대를 가져온 구세주로 묘사해 양탄자, 보드카에까지 자신의 형상을 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우상화 작업에 집착한 니야조프 대통령은 수도 안팎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자신의 동상을 설치하게 했는데요. 금박을 입힌 동상은 태양을 따라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그는 동상이 태양을 향해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존경하는 태양이 동상 주위를 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기까지.

이런 그의 기행은 시작에 불과한데요. 심장 수술을 받은 후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끊게 되자 전 국민 흡연 금지, 개인적으로 립싱크를 싫어해서 모든 가수의 립싱크 금지, 자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페라, 발레 금지, 뉴스 앵커 화장 금지, 남성들 장발 금지, 유학 금지, 인터넷 금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지방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며 지방 도서관 폐쇄.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며 국민들에게 뼈를 씹게 했고 수도인 아시가바트 외에 전국에 병원을 모두 없앴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그는 수도로 오기 힘들면 아예 아프지 마세요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다고 하죠.
또한 세상에서 제일 특이한 공장을 짓겠다며 아시바가트 국제공항의 관제탑을 터미널 뒤에 지어 관제사들 시야를 가려놓고는 보기 좋다라고 말했는데요.

결국 이 공항은 비행기 조종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항 중 하나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행 중 단연 최고가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어록을 담은 루흐나마를 출판,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지정해 가르치게 했고 루흐나마를 3번 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까지.

이런 기이한 통치를 벌인 그는 암살을 두려워해 삼엄한 경비 속에서 지냈다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심장에 문제가 생겼지만 과도한 경호로 인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2006년 12월 21일 사망했다고 합니다.
라이베리아의 찰스 테일러
2012년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가 국제 재판에 회부됐는데요. 그리고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무려 징역 50년.

전직 국가의 수장이 국제 법정에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대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걸까요?
찰스 테일러는 피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데요. 라이베리아뿐 아니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나라 시에라리온까지 참혹한 내전으로 몰아넣은 주범이기 때문. 1989년 내전이 벌어진 라이베리아. 무장 군벌 출신인 그는 내전 중 소년병 착출, 대량 학살, 약탈 등으로 라이베리아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해 실질적인 지배자로 등극하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시에라리온의 내전에도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나라에서나 잘하지 왜 남의 나라 내전까지 참견을 한걸까요? 그 이유는 시에라리온에는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었기 때문. 다이아몬드에 눈이 먼 그는 시에라리온의 반란군에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고 그 대가로 다이아몬드를 챙겼다고 하는데요.
찰스 테일러와 반란군들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두 나라의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 마치 국민들을 죽이기 위해 창설된 군대 같았다고 하죠. 특히 이때 활동한 반란군 부대들의 이름 또한 어마무시했습니다. 집을 불태우는 부대, 유혈 사태 분대, 손 절단 특공대.
그런데 이들 중 최악이 바로 손 절단 특공대였습니다. 반란군은 별의별 이유로 국민들의 손을 잘랐다고 합니다.

허가 없이 다이아몬드를 캤다는 이유, 투표에서 반대파를 찍었다는 이유 등등 이렇게 반란군의 잔혹한 횡포로 손과 발을 잃은 사람의 숫자는 무려 4000명에 이르렀다고 하죠.
반란군은 혹독한 강제 노역, 학살 등을 통해 다이아몬드를 채굴, 이에 피 묻은 다이아몬드, 즉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죠. 이런 와중에 찰스 테일러는 1997년 75% 이상의 득표율로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대통령 선거 당시 그의 유세장에서 이런 선거구호가 나왔다고 하는데요.
[찰스 테일러가 내 엄마를 죽였어, 내 아빠도 죽였지. 하지만 나는 그에게 투표할 거야.]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짓들을 벌였는데 엄청난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이 됐다는 게 너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공포에 의해서 압력에 의해서 선거를 한 거겠죠. 좋아서 뽑은 건 아니에요. 공포정치죠.
하지만 좋은 시절도 잠시, 2003년 UN이 라이베리아 내전 국제전범재판소를 설치. 찰스 테일러를 기소했는데요. 불리함을 느낀 그는 바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나이지리아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그를 추방. 2006년 결국 그는 체포돼 법정에 섰습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영국 출신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는데요.

그에게 다이아몬드 원석을 선물 받았다는 그녀는
[돌덩이 몇개를 받았었어요. 작고 더러운 돌덩이였죠]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소된 지 9년 만에 반인륜 범죄와 전쟁범죄를 방조하는 등 11가지 혐의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50년 형이 선고됐죠.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비델라
2012년 7월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 대통령이 50년 형을 선고받았는데요.

그가 50년이라는 중형을 받은 이유는 군사 독재 시절 저지른 악행 때문. 그것은 바로 조직적인 아기 납치.
1976년 3월 24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비델라 대통령.

그는 독재 체제를 추진하려 했지만 시민들의 시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요.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해 고문한 뒤 처참하게 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 명령. 이에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비델라 군사정권 기간에만 3만 여 명이 납치, 고문,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그런데 비델라 대통령은 반정부 인사로 지목된 사람이라도 임신한 여성을 따로 분류해 아기를 출산할 때까지 기다려줬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아르헨티나의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서. 그런데 그렇다면 자국민 학살을 그만두면 되지 너무 화가 나는데요.
좁은 수용소 안에서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출산을 한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난 뒤 학살을 당했다는데요. 그리고 이때 태어난 아이들의 출생 기록을 위조, 친부모에 대한 기록을 없앴고 친정부 인사 가정에 아이들을 입양 보냈다고 합니다.
여기에 구금시킨 반정부 운동가들의 아이들을 납치. 멋대로 군인, 경찰관, 공무원 가정에 강제 입양시키기까지. 여기에는 자신의 친부모를 살해한 사람의 집에 입양된 아이들도 있었다고 하죠. 그렇게 가족을 빼앗긴 아이들이 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친정부 인사들에게 키워졌고 당연히 비델라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자라게 됐다고 합니다. 인구수를 유지하려는 계획도 있었지만 아예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친정부 세력으로 세뇌시키려는 이런 속셈이 있었던 거죠.
1981년 3월 29일 5년간의 임기를 끝내고 자리에서 물러난 그. 그리고 훗날 더러운 전쟁 기간 동안에 자신을 잃어버린 어머니들이 만든 단체 '5월 광장 어머니회'를 통해 그의 이러한 악행이 알려지게 되는데요. 이에 아이들 중 100여 명이 DNA 검사를 통해 친혈육을 찾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델라 전 대통령은 인권 탄압은 물론 납치, 살인 등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복역 중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고 하죠.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
벨기에의 도살자 레오폴드 2세.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의 역대 왕 중 가장 유명한 왕인데요. 그 이유는 악명 높은 잔인함 때문. 그는 홀로 코스트를 저지른 아돌프 히틀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역사상 가장 잔혹한 통치자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그의 잔혹성과 야만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이 있는데요. 바로 이겁니다.

이 사진은 1900년 무렵 콩고에서 촬영된 건데요. 손이 잘린 흑인 소년과 그 옆에서 웃고 있는 백인 남성의 모습. 대체 당시 콩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왕위에 오른 1865년은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던 때였는데요. 그리고 레오폴드 2세의 눈에 들어온 나라가 바로 콩고였다고 합니다. 그는 콩고를 지배하겠다는 검은 야욕을 숨기기 위해 국제 아프리카 협회라는 단체를 설립, 아프리카에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전파한다는 박애주의를 표방했는데요.
그리고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해 이를 선전한 끝에 그는 콩고의 지배권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개인 자격으로 콩고의 땅과 원주민을 소유, 콩고는 역사상 유례없는 개인 소유의 식민지가 된 것. 1885년 공식적으로 콩고 자유국가를 세운 그는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을 시작. 콩고의 비극이 시작되게 됩니다.
당시 고무 타이어를 이용한 자전거와 자동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레오폴드 2세는 콩고 원주민을 밀림으로 밀어넣어 고무 생산에 투입했는데요. 여기에는 그의 악랄한 수법이 동원됐습니다. 원주민의 아내나 딸을 감금해 놓고 고무를 가져오면 풀어주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기본, 강제 노동을 거부하는 마을은 몰살.
그런데 그의 극악무도함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인당 고무의 할당량을 정해서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시 끔찍한 일을 저지른 건데요. 첫 번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을 잘랐고 2~3차례 미달될 때는 목을 잘랐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의 몫은 그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채워야 했는데요. 이를 못 채우게 됐을 때도 같은 처벌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손이 절단된 뭉툭한 팔목을 가진 원주민들의 모습이 레오폴드 2세의 폭정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가 됐다고 하죠.
이렇게 콩고를 착취해서 올린 수익이 현재 가치로 한화 약 1조 10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레오폴드 2세의 극악무도한 행위는 선교사들을 통해서 콩고 밖으로 알려지게 됐는데요.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지배한 20년 남짓의 기간 콩고에서 숨진 사람은 약 1000만 명, 콩고 인구의 약 절반이 줄어든 수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레오폴드 2세는 끝까지 콩고에서 벌어진 학살을 몰랐다고 잡아뗐다고 하죠.
하지만 그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사태를 방관하던 벨기에 정부는 콩고를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사유지에서 벨기에의 식민지로 병합하기로 하는데요. 벨기에 정부가 콩고를 병합한 뒤 레오폴드 2세의 궁전 옆 소각로는 8일 동안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합니다. 콩고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불태워 없애버린 것. 이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의 콩고를 벨기에 정부에게 넘기지만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벨기에 정부가 알 권리는 없다.]
그리고 이듬해 레오폴드 2세는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죽어버렸어요. 2020년,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에게 벨기에 필립 국왕이 서신을 보냈는데요. 벨기에 국왕은 콩고 대통령에게 식민 지배의 고통은 깊은 유감이라고 보냈지만 레오폴드 2세의 잔혹 행위에 대한 사과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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