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세계 3대 사기꾼 중의 한명인 인도의 나트와랄. 타지마할까지 팔았음.

ˍ 2022. 5. 8.
반응형

1996년 인도 뉴델리의 한 경찰서. 허름한 행색의 80대 노인이 절도죄로 잡혀온다. 딱한 사정 때문에 도둑질을 했다는 노인. 그런데 노인의 정체는 인도의 전설적인 사기꾼 나트와랄이었다.

나트와랄의 사진들

 20세기 인도의 가장 유명한 사기꾼으로 불리는 나트와랄. 그는 에펠탑을 두 번이나 판 희대의 사기꾼 빅토르 루스티그,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존 인물인 프랭크 에비게일과 함께 세계 3대 사기꾼으로 꼽히는 인물인데 그는 변장술에 뛰어났고 무려 90개 이상의 가명을 사용하며 상대방을 속였으며, 뿐만 아니라 사회 사업가로 위장해 엄청난 현금을 가로채는 것은 물론 위조한 화물 운송장으로 기차에 실린 화물을 탈취는 등 사기 수법 또한 매우 다양했다.

 

특히 사람들이 더 경악했던 건 따로 있었는데 나트와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요새 레드포트, 인도 대통령의 공식 관저, 심지어 인도의 국회의사당까지 판매하는 대범한 사기 행각을 이어간 것이었다.

좌로부터 요새 레드포트, 인도 대통령의 공식 관저, 인도의 국회의사당

더욱 놀라운 것은 고위공무원으로 위장해서 부유한 외국인에게 접근해 타지마할까지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무굴제국의 샤자한 황제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부인을 추모하기 위해 2만 명 이상의 장인을 불러 22년간 공들인 끝에 1653년에 완공한 타지마할.

타지마할과 무굴제국의 샤 자한 황제

인도가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전 세계인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트와랄은 뛰어난 화술로 타지마할을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나 팔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사기꾼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일까. 1912년 인도 Bihar주의 철도역장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게 성장한 나트와랄.

영화 미스터 나트와랄의 한장면

어린 시절부터 역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대규모 철도 운송의 흐름을 익힌 그는 이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데다 증권거래인으로서 일했었기에 금융 거래 법규에 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었는데 심지어 첫 정규 직업은 변호사였다. 화려한 말솜씨에 해박한 법률 지식까지 갖춘 그가 이 능력을 바탕으로 사기꾼의 길로 접어든 것은 바로 뛰어난 서명 위조 능력 때문이었다.

 

어느날 친구의 부탁으로 대신 은행 예금을 해줘야 했던 나트와랄. 당시 인도에서는 예금을 할 때 본인 서명 확인 절차가 있었는데 얼떨결에 친구 대신 서명을 하게 된 그는 친구의 서명을 기억해내 똑같이 따라 했고, 그렇게 자신이 서명 위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본격적으로 수표와 어음 등의 서명을 위조, 사기 행각을 벌였던 것이다.

이후 더욱 지능적인 범죄를 이어간 나트와랄. 그는 값비싼 물건을 고른 뒤 은행에서 수표를 지급해 발급받은 어음을 지불했는데, 그러나 그가 은행에 지급했던 수표는 모두 서명을 위조했기에 어음도 무효. 그렇게 수많은 상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이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그가 훔친 물건의 행방은 물론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고 이런 기발한 사기 수법 때문에 인도에서는 사기꾼을 나트와랄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고향에서 나트와랄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달랐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늘 잔치를 벌여 사람들을 배불리 먹인 뒤 골고루 돈을 나눠줬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 방그라 마을에서는 사기꾼이 아닌 영웅이라며 인도의 로빈 후드로 불렸다고 하는데.

영화 미스터 나트와랄의 한장면

그와 별개로 많은 사람에게 천문학적 피해를 남긴 나트와랄은 100가지 이상의 사기 행각으로 수배됐고 무려 113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하지만 체포될 때마다 매번 탈주를 시도한 나트와랄. 9번 중 단 1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탈주에 성공하면서 정작 교도소에 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러던 중 1996년, 84세의 나이에 절도죄로 체포된 것이었다.

노인이 나트와랄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경찰은 곧바로 그를 교도소로 이송하기로 했는데, 나트와랄은 아픈 척을 해서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나트와랄은 경찰의 감시 하에 교도소에서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뉴델리 기차역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뒤로 누구도 나트와랄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그의 기이한 행적만큼이나 생사도 미스터리가 됐는데, 2009년 나트와랄의 변호사는 그가 2009년 7월 25일에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나트와랄의 동생은 이미 자신의 형을 1996년에 화장했다고 주장, 결국 그의 죽음은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으며 범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그의 일대기가 인도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수차례나 제작되었다고 한다.

 

반응형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