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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아바가 해체해야 했던 진짜 이유

ˍ 2022.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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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그룹, 아바(ABBA).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까지 아바 열풍을 일으키며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상에 선 그 순간. 아바의 목소리를 책임졌던 핵심 멤버 아그네사가 충격 선언을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72년 데뷔한 스웨덴 출신의 4인조 혼성 그룹 아바. 아바는 1974년, 유럽 최고의 노래 대회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워털루>라는 노래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후 <댄싱 퀸>, <허니 허니>, <맘마미아> 등 불멸의 히트곡들을 발표했다.

 

앨범 판매량만 무려 3억 8000만 이상에 달하는 전설적인 그룹 아바. 아바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뮤지컬과 영화로 제작될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아바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비요른 울바에우스와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애니프리드 린스태드와 베니 앤더슨커플, 이렇게 두 쌍의 부부로 이루어진 그룹이었기 때문이었다.

좌로부터 비요른 울바에우스, 아그네사 팰트스코그, 애니프리드 린스태드, 배니 앤더슨

부부간의 환상 호흡은 아바의 음악을 만들고 무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이었고 특히 비요른과 아그네사 부부는 활동 중에도 두 아이를 낳으며 화목한 모습을 보여 모범적인 커플로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비요른과 아그네사는 공식석상에서 서로에게 거리를 두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어두운 표정으로 있는 모습이 포착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에 부부가 상담을 다닐 만큼 사이가 악화됐다는 불화설이 일파만파 퍼졌지만 그때마다 비요른과 아그네사 부부는 소문을 일축하기라도 하듯 무대 위에서 멋진 호흡을 자랑했다.

 

그런데. 1979년 이혼을 발표한 비요른과 아그네사. 갑작스러운 소식에 팬들은 충격에 빠졌고 이들의 이혼이 아바 활동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우려했는데. 비요른은 이혼 2년 만에 재혼했고 결국 1982년 아바는 돌연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그룹이 갑자기 해체하게 된 믿을 수 없는 상황.

 

팬들은 아바의 해체 결정타였던 비요른과 아그네사의 이혼 사유에 큰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혼 시점에 아바가 발표한 곡 <더 위너 테이크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의 가사가 아그네사의 심경을 반영했다는 소문과 너무 빨리 재혼한 비요른을 두고 팬들은 그의 외도가 이혼 사유라고 추측. 비요른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런데 얼마 후 뜻밖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이들이 이혼한 건 아그네사의 모성애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1973년 딸 린다를 품에 안은 비요른과 아그네사.

린다가 1살 되던 해 워털루라는 곡이 히트하며 이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부부는 보모에게 한 살배기 딸을 맡긴 채 정신없이 세계 투어를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아바가 공연하던 곳은 유럽 전역과 호주였다. 투어를 끝내고 스웨덴으로 돌아오면 한 달이 지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딸 린다가 엄마 아그네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은 아그네사. 아바의 리더인 남편에게 세계 투어 활동은 무조건 2주 안에 끝내야 한다고 못 박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데.

그 후 아그네사는 가까운 나라로 투어를 갈 때면 꼭 딸 린다를 데려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그렇지 못할 때는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린다의 시간에 맞춰 특히 통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쩌다 딸과 통화하지 못한 날에는 공연 내내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 정도로 괴로워했는데.

투어가 끝나면 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 아그네사.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딸 린다는 너무 어렸기에 엄마, 아빠가 공연 때문에 떠나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이가 우선이었던 아그네사에게 아바의 세계 투어는 점점 더 부담이 된다.

 

게다가 1977년 둘째 피터를 출산하면서 아그네사는 더 큰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당시 아바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미국에서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기에 본격적으로 미국 투어에만 집중하기로 한 상황. 비요른은 신경이 곤두선 채 집에서 곡 작업에만 몰두했고 아그네사는 그런 아빠의 빈자리까지 채워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국 투어 활동 기간에 대한 의견을 두고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했는데. 긴 고민 끝에 아그네사는 아바의 멤버가 아닌 엄마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아그네사는 비요른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남은 계약 기간만 활동한 후 아바를 떠나기로 했는데. 이혼 후에도 아그네사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비요른의 집과 5분 떨어진 곳에 거주, 아이들과 아빠를 자주 만나게 해줬고 딸 린다와 함께 크리스마스 동요 앨범을 내는 등 철저히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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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비요른이 재혼하며 그와 소원해지자 아이들과 스웨덴의 한 시골로 들어가 조용히 지냈는데, 2001년 아바의 전기 <밝은 빛 어두운 그림자(Bright Lights Dark Shadows)>의 출간으로 비요른과 아그네사의 진짜 이혼 사유가 알려지자 많은 팬은 아바의 명성을 뒤로 하고 평범한 엄마의 길을 선택한 아그네사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약 40년 만에 아그네사는 아바 완전체로 컴백하며 팬들의 오랜 기다림과 응원에 보답했다. 어느덧 70대가 된 아그네사는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며 손주들과 함께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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