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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호원을 사랑했던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여동생, 마거릿 로즈

ˍ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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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영국 런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기념해 축하 파티가 열리고 있었는데. 잠시 궁을 빠져나오는 한 여인. 그녀는 엘리자베스 2세의 여동생 마거릿 로즈 공주였다.

마거릿 로즈

그곳에서 자신의 경호원 피터 타운센드를 만난 공주.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는데. 이것은 세기의 로맨스 그 시작이었다. 

피터 타운센드

1930년 영국 국왕 조지 6세의 막내 딸로 태어난 마가렛 로즈. 그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유일한 동생으로 왕위 계승 2순위였다.

어릴때의 마거릿 로즈

마거릿 공주는 위엄 있는 모습의 언니 엘리자베스와 달리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는데, 아름다운 외모와 성격으로 그녀는 이름처럼 영국의 장미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거릿 공주는 숱은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기 시작했다. 배우 피터 오툴, 데이비드 니븐, 피터 셀러스, 그리고 록 밴드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등 유명인부터, 배우이자 갱스터였던 존 빈든까지. 심지어 마거릿 공주는 이미 결혼했음에도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수히 많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구설에 올랐는데 결정적으로 17살 연하의 남성과 밀회 장면이 포착되며 왕실의 사고뭉치로 전락했다.

밀회 장면

마거릿 공주가 변하게 된 이유는 바로 한 남자 때문이었다. 공주가 14살이었을 당시 전속 경호원으로 임명된 피터 타운센드.그는 영국 공군 장교 출신으로 전쟁 중 부상을 당한 와중에도 편대를 이끌고 임무를 완수할 정도로 뛰어난 군인이었고. 조지 6세는 이런 그를 자신의 시종무관으로 두며 공주의 경호까지 맡겼던 것이었다.

 

이후 피터는 경호원으로서 마거릿 공주의 성장을 지켜보며 늘 그녀와 함께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에 점차 미묘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왼쪽 뒤의 남자가 피터 타운센드

하지만 애써 공주의 마음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피터. 그는 마거릿 공주보다 16살이 많았고 이미 두 번의 이혼 경험이 있는 데다 두 명의 아들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터를 향한 마거릿 공주의 마음은 더욱더 커져만 갔는데. 그러던 1952년, 마거릿이 21살이 되던 해 국왕인 조지 6세가 폐암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조지 6세

아버지를 잃은 마거릿은 주체할 수 없는 큰 슬픔에 빠졌고 피터는 그런 공주를 위로해주며 더 이상 본인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연인 사이가 된다.

 

그리고 1년 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날. 기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초대된 가운데 축하 파티가 열렸는데. 이때 마거릿 로즈와 피터 타운센드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기자에게 포착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신문에 대서특필됐고 자녀가 있는 이혼남과 공주의 만남에 영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마거릿과 피터는 만남을 공식화하며 결혼을 발표한다. 하지만 당시 이혼한 사람과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던 왕실 규정에 따라 두 사람은 결혼할 수 없는 상황. 피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마거릿은 언니인 엘리자베스 2세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지만 여왕 역시 영국 의회의 강력한 반대여론을 꺾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초강수를 두었는데, 피터를 2년 동안이나 벨기에로 발령보내버린 것이다. 그렇게 마거릿과 피터는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더 견고해졌고 시간이 흘러 작은 희망까지 생겼는데, 두 사람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던 처칠이 물러나면서 그 후임자로 당선된 앤서니 이든 총리가 이혼과 재혼 경력이 있었고, 이에 마거릿과 피터는 본인들의 사랑 역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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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왕실은 피터와의 결혼을 허락하는 대가로 마거릿에게 왕족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내려놓을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얼마 후 뜻밖에도 마거릿은 피터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고 공식 발표한다. 이 발표는 바로 피터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마거릿을 위해 피터가 이별이라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가게 된 두 사람.

얼마 후 피터는 재혼했지만 신부의 외모가 마거릿 공주와 너무도 닮아 아직도 그가 공주를 잊지 못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이 재혼한 여성.

마거릿 역시 피터의 재혼 소식을 듣자마자 왕실의 사진사였던 안토니와 도망치듯 결혼식을 올린다. 아래 사진이 왕실사진사와 마거릿. 

하지만 마거릿의 남편은 결혼 후에도 복잡한 여성 편력을 이어갔고 이에 마거릿은 결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수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던 것이었다.

 

결국 마거릿은 1978년, 결혼 18년 만에 이혼하며 헨리 8세 이후 영국 왕실에서 이혼한 최초의 인물이 된다. 이후 피터와 마거릿이 다시 만난 건 무려 38년이 지나 마거릿이 62세, 피터가 78세 노인이 된 후였는데,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주변의 이목 때문에 서로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던 두 사람. 당시 현장에 있던 마거릿의 시녀에 따르면 마거릿은 여전히 그에게 애틋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후 피터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마거릿 역시 2002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렇게 대화조차 할 수 없던 짧은 재회가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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