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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작전에서 수많은 민간인을 구한 영웅들 이야기

ˍ 2022.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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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들도 배에 실어야 한다고 미국 장군을 설득한 한국인 통역관 현봉학

지금으로부터 72년 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함경남도 흥남항을 출발한 한 척의 배가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한다. 역사는 이를 이렇게 불렀다. 흥남철수작전.

 

흥남철수작전은 1950년 12월 193척의 선박을 동원, 군 병력과 각종 물자는 물론 무려 10만여 명의 피난민까지 남한으로 철수시킨 사건으로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 작전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원래 이 철수 계획에 사람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1950년 10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한국전쟁의 전세가 뒤바뀐다. 당시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끝내 후퇴를 결정하는데, 유일한 방법은 흥남항에서 배를 타는 것뿐이었다.

 

이에 미10군단과 국군1군단 등 전 병력 10만 5천명, 2만 대의 차량, 35만 톤의 물자를 싣고 남한으로 떠날 선박들이 흥남항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뼛속을 에는 추위 속 적군의 포탄까지 날아드는 상황에서 오직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흥남항에 모여든 수많은 피난민.

 

하지만 당시 미10군단장으로 흥남철수작전의 총책임자였던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은 병력과 물자를 싣는 데만도 선박이 부족한 데다, 피난민 사이에 스파이가 침투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한다.

에드워드 알몬드

그런데 며칠 후 알몬드 장군이 입장을 바꿔 피난민의 수송을 허락한다. 그의 마음을 바꾼 사람은 한국인 통역관 현봉학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알몬드 장군의 결정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현봉학

현봉학은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한국전쟁 발발 후 통역관으로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해병대 사령으로 시찰을 나온 알몬드 장군의 통역을 맡는다. 함흥에 미10군단 사령부를 설치할 예정이던 알몬드 장군은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함흥 출신의 현지인 현봉학을 스카우트한다.

 

두 달 후 현봉학은 알몬드 장군을 수시로 찾아가 피난민을 구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결국 알몬드 장군은 현봉학의 요청을 받아들여 피난민 수송을 허가, 본격적인 흥남철수작전이 시작된다.

무려 14000명의 우리나라 피난민을 태워준 미국의 화물선 선장 레너드 라루

이제 필요한 것은 피난민을 실어나를 선박. 이를 위해 미 군함부터 여객선과 화물선, 심지어 어선까지 흥남항으로 모여드는데, 그중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보여준 배가 있었다. 배의 이름은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 배의 선장 레너드 라루는 피난민을 태워줄 수 있냐는 미군의 요청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흔쾌히 응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

하지만 화물선인 메러디스 호의 정원은 60명 정도로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었기에 추가로 태울 수 있는 피난민의 숫자는 고작 13명뿐. 더 많은 사람이 승선하는 방법은 배에 실은 화물을 모두 버리고 화물칸에 피난민을 태우는 것. 이에 당시 메러디스호에 선적돼 있던 탄약 200kg, 항공유 4만 미터 등 500톤이 넘는 전쟁 물자가 버려졌고 5개의 화물칸은 물론 갑판 위까지 피난민으로 가득 채워진다.

 

피난민을 모두 태우는 데 걸린 시간만 16시간. 메러디스호는 정원 60명의 230배가 넘는 1만 4천명을 태운 채 흥남항을 출발한다. 그렇게 18시간의 위태로운 항해 끝에 메러디스호는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한다. 놀랍게도 단 한명의 희생자 없이 1만 4천명의 피난민 모두 무사했고 심지어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한다.

 

이 날이 1950년 12월 25일.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렀고 메러디스호는 단일 선박으로서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화가 이중섭이 타고 있었다

한편 흥남철수작전 이후 남한에서 새 삶을 살게 된 피난민. 그중에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화가 이중섭이었다. '황소', '싸우는 소', '투계' 등의 명작을 남긴 한국 근대 서양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1943년 일본 유학 후 함경남도 원산에 정착한 그는 일본에서 인연을 맺은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한국전쟁, 특히 흥남철수작전으로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 어머니를 원산에 남겨둔 채 아내와 두 아들만을 데리고 메러디스호에 탑승한 이중섭. 그 후 남한에 정착한 그는 경제적인 문제로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어머니의 생사조차 모른다는 것. 그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 그림을 그렸고 이렇게 이중섭 불후의 명작이 탄생한다. 실제로 연작 '돌아오지 않는 강'의 경우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리는 어릴 적의 자신을 묘사하고 있으며, '가족에게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시인 구상의 가족' 등의 작품에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았다.

 

그러나 1956년, 흥남철수작전으로 어머니와 헤어진 지 6년 만에 이중섭은 정신 분열과 거식증을 앓다 생을 마감한다.

 

수많은 사람, 제각각의 사연을 담은 흥남철수작전. 1950년 12월, 1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을 안전하게 후퇴시킨 이 기적은 72년이 지난 지금도 감동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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