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호랑이가 왜 사라졌을까?
기원전 7000년부터 백두대간을 뛰어놀던 조선의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수호신이자 신성함과 용맹함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러나 산을 넘다가 호랑이를 맞닥뜨리는 일이 빈번했던 만큼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이 무려 4000명에 달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 많던 조선의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
착호갑사
1466년 한양에 살던 청년 '박타내'가 있었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 힘 좋기로 유명했던 그는 특수 군인 모집에 응시한다. 그런데 이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시험을 통과해야 했는데 50m 밖에서 화살 명중시키기, 10m 밖에서 창 던저 맞히기 등, 체력은 물론 활쏘기와 창 던지기 실력까지 고루 갖춰야 했던 것.
이들이 바로 착호갑사. 말 그대로 잡을 착(捉), 호랑이 호(虎), 호랑이를 잡기 위해 조직 운영된 특수부대였다. 그 시작은 1416년 조선의 3대 왕 태종이 머무는 경복궁까지 호랑이가 출몰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호랑이가 나타날 때만 활동하는 임시 조직이었지만 점차 호랑이의 습격이 빈번해지자 정규 부대가 되었고 세조 때에는 그 인원이 200명에 달할 만큼 전문적으로 발전한다.
착호갑사의 방식은 호랑이를 활로 명중시켜 쓰러트린 다음, 가까이 다가가 창으로 급소를 찔러 죽이는 것. 이렇듯 호랑이와 맞서 싸우는 위험한 임무인 만큼 포상은 매우 후했다. 호랑이를 잡을 때마다 쌀이나 면포를 지급했으며 1년에 다섯 마리를 잡으면 노역을 면제해 주었고 10마리 이상 잡으면 품계를 올려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1466년 당시 가장 실력이 있던 착호갑사 박타내가 호랑이에 물려 목숨을 잃는 등 수많은 착호갑사의 희생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착호갑사의 화력은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며 호랑이의 습격으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주었다.
호랑이 고기를 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런데 이들 외에도 조선의 호랑이을 노린 뜻밖의 인물이 있었으니, 일본의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16세기 일본의 최고 권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 혼란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조선을 침략,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는데, 전쟁의 포화가 한창이던 어느 날 도요토미가 일본의 장군들에게 황당한 명령을 내린다. 바로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오라는 것.
놀랍게도 그 이유는 호랑이 고기를 먹기 위해서였다. 섬 나라인 일본은 호랑이가 살지 않아 호랑이 고기를 구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호랑이 고기가 기력을 증진시키고 자양 강장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자 당시의 평균 수명인 40대를 훌쩍 넘긴 50대 중반의 나이로 호랑이 고기가 절실했던 도요토미가 전쟁 속에서도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오라고 명한 것이다.
그의 명령에 일본의 장군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선 호랑이 사냥에 나서야 했다. 호랑이와의 대결 끝에 부하 두 명을 잃고 나서야 조선의 호랑이를 잡게 된 시마즈 장군. 그렇게 포획된 조선의 호랑이는 도요토미에게 보내졌고 그는 호랑이를 포식한다.
1년 후인 1593년, 도요토미는 56세의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게 된다. 그동안 평생 자식을 얻지 못해 후계자 문제로 고생하던 그에게 늦둥이 아들이 생겨 무척이나 아꼈지만 그후 5년 뒤인 1598년 도요토미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숨을 거둔다.
일각에서는 그가 호랑이 고기를 날것으로 너무 많이 먹어 기생충 감염으로 사망했을 것이고 추정하고 있으며, 그 후 1615년, 그의 아들 역시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호랑이 뿐 아니라 수많은 조선인의 목숨을 앗아갔던 도요토미 가문이 영원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일본인들의 호랑이 사냥
그런데 1900년대 초, 조선의 호랑이 역시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며 멸종하고 만다. 그 원인에도 한 일본인이 있었다. 1917년 12월 20일, 일본 도쿄의 제국 호텔에서 200여 명의 고위 관리가 참석한 화려가 파티가 열린다. 주최자는 '야마모토 타다사부로'라는 탄광 회사와 선박 회사를 운영하며 떼돈을 번 일본 사업가였다.
야마모토는 조선에서 잡아온 호랑이 가죽을 자랑하며 심지어 호랑이 고기를 요리해 대접하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조선 호랑이 고기 시식회를 열었던 것. 그는 왜 이런 기막힌 파티를 준비했을까? 사실 당시 야마모토는 졸부의 대명사로 무시당하며 선거에서 낙선을 거듭했던 상태였다. 이에 이미지를 바꿔줄 획기적 방법을 필요했던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야마모토배 조선 호랑이 사냥 대회'를 기획한다. 조선 땅에서 조선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마음껏 잡아들임으로써 일본의 힘과 영향력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우리 민족의 얼을 앗아가고 정체성을 잠재우려는 일종의 민족말살정책이었던 것. 예산은 8만 원, 현재 13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모두 야마모토의 사비였다. 11월 12일부터 한 달 동안 함경도, 강원도, 금강산, 전라도 등지에서 200여 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에 나섰고, 그후 조선과 일본에서 두 차례에 걸쳐 호랑이 고기 시식회를 성대하게 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총복부는 사람을 위협하는 해로운 동물, '해수'를 없애겠다며 해수 구제 사업을 실시하는데 이는 조선 호랑이는 물론 아무르 표범, 백두산 사슴, 수리부엉이 등 우리나라 고유의 동물을 잡아들여 씨를 말리겠다는 속셈. 결국 1934년 조선에 남은 호랑이의 수는 한 마리 뿐이었고, 1940년에는 그마저 포획되면서 끝내 조선의 호랑이는 멸종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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