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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암스트롱에 가려졌던 버즈 올드린의 비하인드 스토리

ˍ 20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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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20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 표면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 아폴로 11호에서 내린 두 우주인들은 역사적인 인류의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간 우주인. 달에 인류의 흔적을 남기고 달 표면에 인류의 첫 발자국까지 남겼다. 달 착륙 당시에 촬영된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이 사진들.

그런데 사진의 주인공은 모두가 예상한 그이름,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이 아니었다. 오히려 닐 암스트롱의 모습은 헬맷에 작게 비춰져 있을 뿐, 사진 속 주인공은 버즈 올드린(Buzz Aldrin)이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버즈 올드린이고 헬멧에 비춰진 사람이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소변을 본 사람,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성찬식을 한 사람. 그리고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셀카를 찍은 사람이기도 하다.

버즈 올드린
최소로 우주에서 찍은 셀카, 버즈 올드린

그런데 왜 우리는 그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까. 

 

1930년 미국 뉴저지주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미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한 후 공군에 임관해 조종사가 된 버즈 올드린.

1952년에는 한국전에 참전해 비행 중이던 소련의 미그기를 두 대나 격추시켜 십자훈장을 받기도 했다. 당시 격추된 미그기에서 탈출하는 소련 조종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미 유력매체 라이프지에 금주의 사진으로 선정되는 일도 있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내로라하는 우주 전문가였다. 1961년, 그는 MIT에서 유인 궤도 랑데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랑데부란 초속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다니는 우주선을 도킹하기 위해 속도 차이를 0으로 조절하는 기술로 버즈 올드린 고안한 이 기술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버즈 올드린의 유인 궤도 랑데부 논문

이렇듯 우주 과학에 대한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비행 조종 능력까지 두루 갖춘 버즈 올드린. 

 

1963년 그는 미국항공우주국, 나사의 일원으로 선발된다. 당시는 소련과 미국 사이에 우주 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는데 19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캐네디 대통령은 서둘러 아폴로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이는 인류 최초로 인간이 달에 도착해 인류의 발자국을 남긴 뒤 다시 지구로 귀환하는 것으로 달에 발을 내딛어 소련보다 앞서 나가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나사는 1940억 달러, 한화 230조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할 최고급 정예 인력 29명을 선발하는데 버즈 올드린이 바로 그 29명에 뽑힌 것이다.

나사에 입성한 그는 중력 상태에서의 비행과 우주 유영에 대비한 수중 훈련법을 개발하고 2인 유인 우주선 비행 계획인 제미니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1966년 제미니 12호를 타고 처음으로 우주로 떠난 그는 5시간 30분 동안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온다.

 

버즈 올드린은 달에 발을 디디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고 1969년 그 꿈은 현실이 된다. 드디어 아폴로11호의 우주인으로 선발된 것이다.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와 함께 3명의 탑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버즈 올드린.

그의 임무는 달에 직접 도착할 달착륙선을 조종하는 것으로 그보다 2년 앞서 나사에 입사한 선임이자 아폴로 11호의 대장인 닐 암스트롱은 총 지휘를, 마이크 콜린스는 달 착륙선의 도킹을 기다리며 달의 궤도를 도는 사령선을 조종하기로 한다. 그러자 착륙선에 탑승할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중 누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딛는 퍼스트 맨이 될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버즈 올드린은 퍼스트 맨이 되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했지만 나사는 달 착륙선의 조종사인 버즈 올드린이 먼저 내렸다가 뒤에 사고가 발생하면 귀환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이유를 들며 닐 암스트롱를 퍼스트 맨으로 결정한다. 먼저 달에 내린 닐 암스트롱의 가슴에 부착한 카메라로 그다음에 달에 내리는 버즈 올드린의 모습을 담기로 한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1969년 7월 16일.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폴로 11호가 발사된다. 나흘간의 비행 끝에 사령선과 착륙선이 분리되고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탑승한 착륙선은 무사히 달에 착륙한다. 정해진 대로 닐 암스트롱이 먼저 달에 발을 디뎠고. 19분 후 버즈 올드린이 그를 뒤따른다. 버즈 올드린은 달에 성조기를 꽂는 등 계획된 임무를 수행했고 미리 정한 대로 닐 암스트롱은 그런 버즈 올드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이렇게 해서 성조기를 꽂는 우주인, 달에 남은 인류의 발자국 등 달에서 찍힌 모든 사진의 주인공이 버즈 올드린이 되는 것이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사진을 남기고 발사 후 8일 만에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공적으로 귀환하는 그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닐 암스트롱에게만 향해 있었다. 닐 암스트롱의 들러리만 밀려난 버즈 올드린은 크게 상심했다. 세 사람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25개국을 순방하는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펼쳤는데 어디를 가든 닐 암스트롱에게만 질문이 쏟아졌고 인류 최초라는 타이틀 역시 온전히 그의 차지였던 것이다.

 

버즈 올드린은 다시 달에 보내달라고 호소했지만 나사는 이를 거절했다. 혹시 다시 달에 갔다가 사고가 생기면 소중한 재원을 잃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실망한 그는 결국 1971년 나사를 그만두고 만다. 이후 그에게 악재가 연속적으로 닥치게 된다. 1973년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에는 가정 불화 속에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자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광을 한몸에 받으며 버즈 올드린의 부러움을 산 퍼스트 맨 닐 암스트롱도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달 착륙이 조작된 것이라는 음모론에 시달리며 심지어 살해 협박까지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버즈 올드린은 완전히 잊혀진 것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에서 버즈 올드린을 모티브로 만든 등장인물, 우주인 버즈를 통해 그의 이름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버즈 올드린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속에 술을 완전히 끊고 알코올 중독을 극복해낸다. 또한 우주정거장에 관한 특허를 내는 등 우주 과학 분야의 연구를 이어갔고.

달에서의 경험을 담은 자선전을 집필한 데 이어

유명 토크쇼에 출연하거나 우주 소재 영화의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현재 90세 고령이 된 버즈 올드린.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 세계를 돌며 우주 전도사로 맹활약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사람들은 1등 닐 암스트롱만 기억했지만 사진은 2등, 버즈 올드린을 기록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2등의 모습이 역사적인 순간의 한 장면으로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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