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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사건의 전말

ˍ 20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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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나온 지존파 사건 정리.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난 1994년, 그런데 이 사고의 한달 전에 돈 때문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1994년 9월에 성인 남자들이 잇따라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첫번째 실종자는 36살의 밴드마스터 박씨.

카페에서 연주를 마치고 귀가를 한다고 돌아갔는데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4일 동안 깜깜무소식인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가족이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런데 신고한 다음 날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타고 나갔던 고급 승용차 안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이 됐는데 발견된 장소도 그렇고 가족들이 보기에는 너무 이상한 것이다. 일단 집이 경기도 성남이고 일터는 서울인데, 시신이 발견된 곳이 전라북도 장수였다.

산이 워낙 험한 지역이고 이 밴드마스터 박씨가 전혀 갈 일도 없는 곳이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인데 거기에서 발견이 된 거다. 그러면 가족들이 이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시신의 상태가 더 이상했다. 승용차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져 있었는데 큰 상처가 없었다. 시신에 골절도 없었다. 

 

당시 목격자 말로는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 일단 목격자가 술 냄새가 났다고 하니까 음주운전에 의한 사고사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날 또 하나의 실종 사건이 또 일어나게 된다. 이번에도 실종자는 성인인데 부부였다. 아내도 같이 사라진 것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 윤 씨 부부였다.

 

실종 신고를 한 직원이 회사의 장 부장이라는 분인데 신고 내용이 좀 이상했다고 한다.

 

[경찰이죠? 저희 사장님이 납치당한 것 같아요. 납치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매주 화요일에 회사에서 회의 같은 걸 하는데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사장님이 안오셔서 의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오후 4시경에 전화가 온다.

 

[장 부장, 나야. 오늘 교통사고가 나서. 그런데 합의금이 좀 필요해. 한 1억 정도]

 

그 당시에 1억이면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 전셋값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님이 전화를 해서 워낙 급하다고 하니까 돈을 끌어모았다. 그런데 아무리 긁어모으고 긁어모았는데도 8천만 원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약속 장소가 공장은 울산이고 집은 서울인데 전라도 광주로 오라는 것이다. 사장님이 광주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런데 더 수상한 건 처음에는 광주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육교 밑으로 오라고 그랬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전화가 다시 온다. 광주터미널로 오란다. 일단 갔다. 그런데 또 전화가 온다. 다시 시외버스터미널 육교 밑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 옆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 멀리서 사장님의 고급 승용차가 오는 게 보인다. 사장님이 내려서 걸어오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마에 약간 상처가 있는지 반창고까지 붙이고 있다. 그래서 이 장 부장이 막 뛰어나갔다.

 

[사장님, 이거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물어보려고 했더니 사장님이 말을 탁 가로챘다.

 

[납치됐어. 빨리 가. 따라오지 마.]

 

그러고서는 돈가방만 갖고 다시 유유히 사라졌다. 

 

밴드 마스터 박씨 사망 사건, 중소기업 부부 납치 사건, 같은 날 벌어진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실종된 사람들이 다 그랜저를 타고 있던 것이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공통점이 있는데 돈을 요구한 것은 중소기업 윤사장 부부에게만 요구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실마리가 의외의 곳에서 풀리게 된다.  윤 사장 부부가 실종되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 때다. 새벽 2시에 서초경찰서 강력반장에게 호출이 온다.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지금 반장님을 찾으시는데요?]

 

살인사건 피해자라고 연락이 와서 반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일단은 신고가 들어왔으니까 서로 갔다. 그런데 갔더니 그 피해자라는 여성이 반장님을 보자마자 막 매달렸다.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이때 반장님이 고병천 강력반장이다.

[고병천 당시 서초경찰서 강력반장 : 첫마디가 저 좀 살려주세요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여기 경찰서인데 누구를  살려줍니까, 그분 이야기하는 것이 저로서는 좀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자는 20대의 유 씨였다. 옷은 흙투성이고 계속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벌 떨었다. 거기에다가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얘기들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걔네들은 악마예요. 사람들을 막 납치해서 죽이고.]

 

그러면서 계속 울었다. 반장님하고 경찰관분들이 뭔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혹시 마약한 거 아닐까 해서 주삿바늘이 있나 팔도 걷어봤다. 그런데 주사 자국도 없다.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까 뭔가 좀 걸리는 게 있었다. 걔들이 납치해서 데리고 온 사람 중에 무슨 회사 사장 부부가 있는데 8천만 원을 빼앗고 나서 총으로 쏴서 죽였다는 것이다.

 

고 반장님이 듣고 보니까 낮에 신문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는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여자도 그 기사를 봤을 수 있다. 그래서 아는 얘기를 좀 더 부풀려서 과장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자 말이 죽인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이다. 죽인 다음에 전북 장수에 가서 시신을 차에 태운 다음에 절벽 밑으로 밀어버렸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위장하려고.

 

약간 좀 께름칙해서 장수경찰서에 고 반장님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된 적도 없다. 겪지 않고서야 이 얘기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때 이 여자분이 갖고 온 핸드폰이 울린다. 그런데 이 여자가 완전히 깜짝 놀라더니 전화를 받지도 못한다. 그래서 고 반장이 대신 받았다.

 

[수정아, 수정아.]

 

그런데 고 반장이 말을 하면 안 되니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이름 부르는데 답이 없으니까 잠깐 있다 끊은 것이다. 이 고 반장에게 촉이 왔다. 이거 뭐 진짜 뭔가 있구나. 그리고 범죄의 냄새가 난다. 뭔가 강력 사건이다. 촉이 딱 왔다. 이때부터 유 씨, 이 여자분한테 본격적으로 진술을 받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었다.

 

걔들은 돈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직도 만들었는데 이름이 마스칸이란다. 그리스어로 야망이라는 뜻이다. 조직원은 총 6명이다. 두목, 부두목, 조직원, 행동대장. 6명이고 그녀가 직접 본 피해자만 3명이었다. 그리고 무기도 어마무시 했는데 그 당시에 상상도 안 되는 소총, 도끼 온갖 무기들이 아지트에 쫙 깔려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그 아지트 곳곳에 다이너마이트가 20여 개가 설치가 돼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들이닥치면 언제든지 터뜨릴 수 있도록.

 

만약에 이 여자분의 말이 사실이면 역사상 전무후무한 범죄조직이다. 악마들이 있다는 그 아지트의 장소는 바로 전라도 영광이었다. 고 반장님이 속해 있었던 강폭(강력폭력) 4반 식구들만 가기로 결정을 했다. 총 7명이었다. 그런데 다 공수부대 출신이다. 씨름선수 출신, 무도 유단자들. 거의 강력계의 어벤저스라고 봐도 될 정도의 팀이었다.

 

강폭 4반은 그 길로 전라도 영광으로 향했다. 딱 봐도 20가구도 안 되는 작은 마을. 너무 한적한 시골이었다.더 놀라운 건 그 마스칸의 아지트의 외관이었다. 민트색 담벼락에 꽃분홍색 예쁜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거기에다가 대문도 활짝 열어놨다. 형사들은 잠복 근무를 시작한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오후근 형사는 쌍안경, 무전기를 들고 밤새 감시했다고 한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바로 그때 한 사내가 나와서 갑자기 트럭을 타고 운전해서 나가기 시작한다. 형사는 차로 쫓아갔는데 상대는 눈치를 챘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상대가 아지트에 연락할까봐 급한 마음에 아예 이 범인의 차를 들이받아서 검거에 성공을 한다.

 

잡아서 추궁을 했더니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여자 말이 다 맞는 것이다. 일단 마스칸 맞고 자기가 부두목이라는 것이다. 이름은 강동은.

그런데 이제 남은 마스칸 일당들이 잡아야 되는데 아지트에는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무작정 들이닥쳤다가는 다 죽을 수 있는 상황. 그래서 유인 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일단 그 동네에서 근무하는 파출소 순경부터 섭외를 했다. 형사는 파출소 순경에게 우리는 사투리를 못 쓰니까 당신이 전화를 해라, 왜냐하면 서울 형사들이 전화를 하면 뭐지? 이 동네 말투가 아닌데? 이러니까 순경이 전화를 하도록 했다.

 

[아따, 그 집이 강동훈 씨 집 맞죠잉? 아따, 차 사고가 났는디 거시기 병원으로 가부렀당께? 여 와가꼬 강동은씨 가방 싸게 가져가쇼잉]

 

이 아이디어가 먹힌 것이다. 이 사투리가 신의 한 수였다. 그래서 고 반장님이 1조는 파출소에 대기해라, 이놈들이 이제 가방을 찾으러 올 거니까. 2조는 아지트에서 잠복하고 연락을 기다려라고 지시한다.

 

잠시 후에 파출소에 차 한 대가 쓱 도착한다. 멀리서 보니까 세 놈이 타고 있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안 들어오고 입구에서 한 명만 내려서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차에서 내린 한 명은 자리에서 일단 잡았다.

 

차는 바로 도주를 했다. 같은 시각에 아지트도 난리가 났다. 이 차를 타고 도주하던 놈들이 연락을 한 것이다. 이러다가 다 놓치겠다 싶어서. 2조가 진입한다. 2명이 있었는데 1명은 그 자리에서 잡았고,

다른 한 놈이 팬티 바람으로 바로 도망을 쳤지만 나중에 이웃 주민이 신고해서 숨어 있는 놈을 잡는다.

그러면 6명 중에 4명은 잡았다. 그런데 차로 도주한 2명. 이들도 얼마 도망가지 못해서 주유소 인근의 담벼락을 들이받고 검거된다.

놀랍게도 2시간 만에 이 작은 인원으로 마스칸을 일망타진한 것이다.

 

이들은 지존파로 알려졌는데 원래 이름이 마스칸이었다. 지존파로 불린 이유는 두목의 이름이 김기환인데 얘 별명이 지존이었다.

그런데 고병천 반장님이 수사를 할 때 마스칸, 마스칸 이렇게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아무래도 입에 안 붙고, 뜻이 야망이라고 하는데 뜻도 마음에 안들고 그래서 야망 같은 소리 하고 자빠져 있네. 야, 너네 그냥 지존파 해라. 네 별명이 지존이라며? 지존파 해! 이렇게 해서 고병천 반장이 붙여준 이름이 지존파이다.

 

이 지존파가 그때 당시에 정말 유명해졌던 이들이 했던 말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강동은 지존파 부두목 : 내 손에 못 죽여서 시작도 못 하고 간 게 참 한이 되고.]

 

[김현양 지존파 행동대장 : 이렇게 빨리 잡혀서, 돈 많고 사람 무시하는 놈 못 잡아서 한이 될 뿐이야.]

 

[강동은 지존파 부두목 : 압구정동 야타족들. 그랜저 몰고 다니면서 흙 튀기고. 그 X자식들 못 죽여서 지금 사회의 볼거리가 됐지만. 이걸 하나도 빠짐없이 좀 방송해 주십시오.]

 

당시에 이 지존파의 타깃은 부자, 그중에서도 야타족과 오렌지족이었다.

고급 승용차 타고 다니고 사치를 막 일삼던 그들에게 사회적으로 지탄이 일어났었는데 지존파도 이 오렌지족을 증오한 것이다. 이 더러운 세상 가난한 놈은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돈 많다고 으스대는 놈들 아주 싹 청소해버려야 돼.

 

이 지존파에서 앞장을 선 게 바로 두목 김기환이었다.

[김기환 지존파 두목 :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야. 이거는 세상 법이 X같은 거야.]

 

지존 김기환은 굉장히 똑똑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우등상을 타고 올수, 그리고 중학교 때 전교 5등까지 했었다.그런데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막노동을 시작한 것이다. 부두목 강동은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희 고향 선배로서 모든 것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 지존으로 모시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지존파는 나름의 행동 강령들이 있었다.

 

지존파 행동 강령.

1. 돈 많은 자들을 증오한다.

2. 각자 10억 원을 빼앗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3. 조직을 배반한 자는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 죽인다.

4.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마라.

 

이 조직을 움직이려면 제일 필요한 것이 돈이어서 이 조직을 만들기 전에 조직원들이 다 같이 막노동을 했다고한다. 한 푼도 안 쓰고 안 먹고 악착같이 돈만 벌었다. 그리고 돈을 모은 다음에 예행연습에 들어간다. 이들은 바로 살인 연습을 한다. 이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폭력, 절도 전과만 있었지 살해를 해본 사람이 여섯 명 중에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까 살인 연습을 해야겠다해서  93년 7월 새벽에 한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하고 성폭행을 했다. 여자는 실신 상태가 됐다. 그때 지존이 나서 목을 조른다.

김현양은 김기환이 '사람은 이렇게 죽이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 같이 암매장을 한다. 그런데 사건 직후에 조직원 하나가 몰래 도망쳤다. 그는 매일 밤 그 여성을 살해한 이후로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열여덟 나이밖에 안 됐다.

 

이들은 도망친 조직원을  찾아나선다. 친척집에 숨어 있는 애를 발견하고 잘 타일렀다. 네 마음 나 다 이해한다. 힘들지? 괜찮아, 괜찮아. 잠깐 밖으로 나와, 그리고 달래는 척하고 집단폭행을 해서 살해한다.

 

 

지존파는 그후 막노동으로번 돈 2천만 원을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지트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슬라브집 지하에 감옥, 무기고 그리고 소각로까지 만든다. 이렇게 세 달 만에 살인 공장이 완성다. 자기들끼리는 그 공간을 아방궁이라고 불렀다. 지하실의 입구는 차고의 차 밑에 비밀의 문이 있었다.

 

쇠창살이 쳐져 있는 감옥과 시체 소각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살인공장을 완공할 때쯤에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진다. 두목인 지존이 감옥에 간 것이다. 아는 사람 집에 놀러 가서 그 집 조카를 성폭행해서 감방에 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계획에 차질은 없었다. 감옥에서 지존이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무기를 수집해라는 지시에 가스총, 공기총, 도끼, 전기충격기를 구한다.

다이너마이트도 구했는데 이것은 탄광에서 일할 때 슬쩍 빼돌린 것이다.

이렇게 총 18종 70여 개의 무기를 모은다.

두 번째 지령은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을 납치해서 돈을 뜯어낸 뒤 죽여라는 지령이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갔다. 며칠 후에 지존파들은 목표물을 발견한다. 9월 8일 새벽. 인적 없는 좁은 도로에 각그랜저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남자 1명 여자1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 앞에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앞을 막고 뒤에서 화물차가 또 길을 막는다. 그리고 남자 셋이 뛰어와서 가스총을 쏘고 얼굴을 주먹으로 구타를 해서 순식간에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까 캄캄한 감옥에 있었던 것이다. 지존파의 살인 공장에서 눈을 뜬 것이다.

 

이 납치된 여자가 최초로 신고한 유씨이고 남자는 밴드마스터였다. 이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닌데 악기를 싣기 위해 큰 그랜저가 필요했는데 돈이 없으니까 700만 원 중고차를 산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범행 대상을 완전 잘못 고른 것이다. 그러나 얼굴을 보였으니 살려두면 신고한다고 죽일 계획을 세운다. 술을 잔뜩 먹여서 밴드마스터를 재우고 행동대장인 김현양이 여자를 부른다. '살고 싶어? 그럼 죽여.' 그러면서 비닐봉지를 건네준다. 남자 얼굴에 씌우라고 계속 흉기로 위협하면서 남자를 죽이라고 했다.

 

자기가 지금 납치된 이 상황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너무 끔찍한데 같이 있던 지인까지 죽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여자가 못 하겠다 버텼다. 그랬더니 강제로 여자 손을 남자의 비닐 쓰고 있는 얼굴에 갖다 댔다고 한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이 손을 떼지 않았다. 여자를 공범으로 만들려고 그런 것이다.

 

이 죽은 남자를 교통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절벽 아래로 밀어넣고 다음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유 씨를 데리고 다니기로 한다. 행동대장 김현양이 이 여자분을 조직원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자가 있어야 의심을 덜 받는다는 이유란다. 한참을 막 다니는데 중년의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러 온 부부였다. 이 부부가 윤 사장 부부였다. 이분들도 원래 부자가 아니라 완전 자수성가했던 흙수저 출신이라고 한다.  8천만 원도 그냥 있던 돈도 아니고 회사 어음 막으려고 했던 돈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윤사장의 노트에는 지존파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저도 근근이 마련한 회사이오니 어엿한 중소기업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15일에 돈을 막지 못하면 부도 위험이 있습니다. 원하는 방법대로 다 하고 또 돈을 벌면 되니까 그리 아까워하지 않겠습니다. 경찰에도 알리지 않겠으니 제 아내와 딸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오.'

 

 

그날 밤 살인 공장에는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도 행동대장 김현양이 여자를 끌어들였다. 공기총 방아쇠를 당길 때 유 씨의 손가락을 강제로 넣어서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유 씨라면 어떻게 했을까, 계속 살아가야겠다 이런 생각도 안 들 것 같은데 만약에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면 이 사건은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 수도 있는데 그녀는 삶에 대한 의지를 오히려 더 불태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살아서 이 악마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 해서 반찬도 해 주고 김치도 담가주고, 조직원이 된 것처럼 마치 협조하는 척하면서 느슨하게 기회를 계속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지존파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특히 김현양이 유 씨를 마음에 뒀던 것 같다.

 

[김현양 지존파 행동대장 : (유씨를) 우리 멤버로 만들려고요. 애들(지존파)한테도 말했지만 걔(유씨)를 강하게 키우고 싶었어요, 로봇으로.]

 

[기자 : 그 여자를 사랑했어요?]

 

[김현양 지존파 행동대장 : 우리는 사랑하면 안 돼요, 일할 때는. 평상시에 애인도 사귀면 안 되고. 무슨 사랑이에요. 사랑이 밥 먹여줘요? 사랑 같은 거 안 해요.]

 

 

 

김현양이 그녀에게는 거의 유일한 보호막이었다고 한다. 우리 조직원으로 곁에 둬야 한다, 살려둬야 한다, 죽이지 말고 아예 조직원으로 만들어서 같이 가자. 그런데 반대 의견이 너무 센 것이다. 왜냐하면 네번째 강령인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마라에 위배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 유 씨를 놓고 조직원들끼리 싸우게 된다. 죽이느냐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느냐를 가지고 난투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김현양 머리가 찢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상황이 일생일대의 찬스가 된 것이다. 다음 날 병원을 가는데 그녀를 데리고 간 것이다.

처음으로 밖에 나갔으니까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김현양이 눈치를 챈 건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도망가고 싶죠? 도망가고 싶으면 가보세요.]

 

핸드폰하고 가방을 다 맡기고 진료실로 들어가는데. 진료실로 가다가 뒤를 딱 돌아보더니 씨익 웃더라고 한다. 도망치느냐 마느냐. 일생일대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이거 지금 조직원 테스트하는 거 아닐까, 밖에서 딴 놈들이 지금 기다리고 있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거 아닐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잡히면 나는 이 길로 무조건 죽는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니야,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결심하고 진료실 문이 닫히자마자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납치돼서 도망쳤다 하니까 기사님이

 

[아니, 그런 놈들이 있어? 이 동네 사람들 내가 다 아는데 그놈들 이름이 뭐요?]

 

이러는데 그 말이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혹시 이 아저씨도 지존파랑 엮여 있는거 아니야? 이 동네 자체가 그냥 지존파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너무 소름이 끼쳐서 바로 문을 열고 내렸고, 포도밭으로 가서 포도밭에 평상 하나가 있었는데 평상 안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래서 장장 8시간 동안 안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밤이 돼서 밖으로 나와 기사 딸린 렌터카를 불러서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그 길에도 너무 무서워서 차 바닥에 누워서 가셨다고 한다.

 

그 시각 지존파 조직원들은 당연히 이 여자가 도망친 걸 알고 영광경찰서 앞으로 간다. 유씨가 영광경찰서로 신고하러 올까봐 영광경찰서 앞에서 3일 동안 지켜본 것이다. 누구나 탈출하면 가장 가까운 경찰서로 갈 것이다. 분명히 그녀가 이리로 올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유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지존파는 그녀가 공범이니까 신고를 못했을거라고 생각한다.

 

유씨는 탈출하고 14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한다. 만약에 이 유 씨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피해자들이 나오고 진짜 어쩌면 그게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유 씨는 이런 사정이 다행히도 정상참작이 돼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현재 유씨의 근황을 고반장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는데 그 사건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주 엄청난 트라우마로 와 닿은 것이어서 가정 생활도 유지가 안 됐고 또 설상가상으로 몇 년 있다가 암이 생겨 몸에도 전이가 많이 된 상태라 지금  암 투병 중이라고 한다.

 

형언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지존파 일당은 사형 선고를 받고 7개월 후에 집행이 되었다.

 

이들은 10억을 모으면 그만 둔다고 했는데 왜 하필 10억일까.

당시에 10억 모으기 열풍이 불고 있었고 인터넷에는 10억 모으기 카페가 100여 개, 서점가 화두도 부자와 10억이었다. 그 당시에 황금물질만능주의 세태가 이런 괴물을 또 만든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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