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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와네트와 페르센의 애절하고 안타까운 비밀편지

ˍ 202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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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비가 은밀하게 보낸 편지. 80년 후 이 비밀 편지가 세상에 공개된다.

1877년 스웨덴의 한 귀족이, 가문이 소장하던 편지들을 공개한다. 그 편지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누군가에게 보낸 비밀 편지들로 편지의 수는 60여 통에 달했다.

편지들은 1791년 6월부터 1792년 8월까지 약 1년간 보내진 것으로 이 시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튈르리 궁전에 감금돼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개된 편지의 일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지워져있었다. 어떤 편지는 앞부분이, 어떤 편지는 뒷부분이, 단어와 횡, 문단 등 본래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덧칠돼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고 또 왕비는 누구에게 비밀 편지를 보냈던 것일까?

1770년 14살의 프랑스 왕세자 루이16세에게 시집왔던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

이 결혼은 오스트리와와 프랑스가 맺기 위한 정략 결혼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낯선 나라에서 외로운 왕세자비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랬던 1774년.

 

[페르센 : 왕세자비 전하, 스웨덴에서 온 페르센입니다]

 

그는 스웨덴의 귀족 악셀 폰 페르센 백작으로 잘생긴 외모에 매너까지 좋아 유럽 사교계에서 인기가 높았다.

악셀 폰 페르센

[마리 앙투아네트 : 우리 프랑스군 장교로 입대하셨군요]

 

[악셀 폰 페르센 : 네. 왕세자비님을 잘 보필하겠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 잘 부탁해요]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프랑스 왕실에서 같은 이방인이었기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 이에 귀족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이 비밀 연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왕비로 등극한 후에도 페르센은 베르사유 궁전을 자주 드나들었고.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789년, 마리 앙투아네트가 불안감을 느끼자 베르사유 궁전 인근에 집을 마련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 발발 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혁명군에 의해 튈르리 궁에 감금되는데. 당시 루이 16세는 혁명군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인 신성 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한다.

레오폴트 2세

그러자 페르센은 국왕 일가를 벨기에로 탈출시키는 비밀 작전을 계획하는데.

[페르센 : 러시아 여권입니다. 폐하 가족을 러시아 백작의 하인으로 위장해 프랑스 국경을 넘겠습니다. 이미 마차 세 대를 준비했습니다]

 

1791년 6월 20일. 마침내. 페르센의 호위 속에 루이 16세의 가족들은 파리를 탈출한다.

그런데.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센의 연분을 알고 있었던 루이 16세가 탈출 도중 페르센의 호위를 거부한다. 절대 마차에서 내리지 말라는 페르센의 조언을 무시한 루이 16세는 결국 프랑스 북부 바렌에서 혁명 세력에게 붙잡혀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를 바렌 사건이라 부르는데.

그로부터 230년 후인 2021년. 1877년 공개된 편지들(바렌 사건 이후 튈르리 궁에 다시 갇힌 마리 앙투아네트가 페르센 백작에게 보낸 편지)을 구입해 보관해온 프랑스 국립문서보관소는 편지에 감춰진 내용을 복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소르본 연구팀에게 15통의 편지 내용을 해독을 요청한다. 이에 연구팀은 분석을 시작하는데.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음 편지를 쓸 때 사용한 잉크와 위에 덧칠된 잉크에 구리, 철, 아연 등화학 성분을 분석해 엑스선 형광 스캐너를 이용해 글자 층을 구분해내는 방식을 고안.

마침내 230년 만에 편지의 비밀이 풀렸던 것이다. 그런데. 해독된 문장을 본 연구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30년 만에 해독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밀 편지.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내용은.

 

[내 사랑, 당신 없이는 내 마음이 행복할 수 없어요.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당신..]

 

그랬다. 이 편지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센 백작이 서로 주고받은 연애 편지였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편지에 덧칠을 하며 내용을 지운 사람의 정체였다. 편지 속 잉크 분석 결과 내용을 덧칠한 잉크가 페르센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편지에 쓴 잉크와 동일. 편지 속 내용을 감춘 사람은 다름아닌 페르센 백작이었던 것이다.

 

바렌 사건 이후 페르센은 루이 16세 일가를 다시 구출하기 위해 1793년 튈르리 궁에 다시 잠입했지만 루이 16세는 단호히 거절했고 바렌 사건으로 성난 민심으로 인해 루이 16세의 처형이 결정된 상황이었다.

[페르센 : 오늘 당신을 보지 못하면 안 될 거라 생각해서 찾아왔습니다]

 

[마리 앙투와네트 : 곧 폐하가 처형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나겠죠]

 

[페르센 : 왕비 전하를 구출하기 위해 유럽 각국에 연합군을 요청했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 주십시요!]

 

[마리 앙투와네트 : 페르센, 우리가 열여덟 살에 만나 지금까지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요. 마지막까지 당신이 날 지켜주려 했던 거.. 잊지 않을게요]

 

[페르센 : 마리..]

 

[마리 앙트와네트 : 이 소중한 편지를 더 이상 내가 보관하긴 어렵게 됐네요.]

 

(마리 앙트와네트는 그동안 받은 편지를 페르센에게 건네준다)

 

[페르센 : 영원히 당신이 저와 함께 있음을 느낄 겁니다]

페르센 백작은 프랑스 혁명 당시 사치와 남성 편력의 여왕이라는 오명을 쓴 마리 앙투아네트의 억울함을 밝히고자 편지를 보관했으나 둘 사이의 개인적인 내용을 감추기 위해 덧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1793년 10월 16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죽음을 전해들은 페르센은 매우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소설과 뮤지컬, 영화로도 그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센 백작의 사랑.

그들의 비밀 편지 내용이 공개된 후 두 사람이 진짜 연인이었다는 것이 증명됐는데. 한편 마리 앙투아네트 사후 평생 독신으로 살아간 페르센은 1810년 6월 20일 그가 사랑하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도피시켰던 바렌 사건날과 같은 날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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