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 존 F 케네디. 주영 미국 대사였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를 따라 정치계에 발을 들인 존 F 케네디는 44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고 젊고 활력 넘치는 이미지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그런 그가 1963년 11월 22일, 암살범에 저격당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암살범은 리 하비 오스왈드. 도주하다 체포된 그는 구치소로 이동되던 중 존 F 케네디 추종자로 알려진 잭 루비라는 남성의 총에 맞아 사망했는데.
대법관 얼 워런이 이끄는 암살범 진상조사위원회는 얼마 후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사건을 종결 지었다. 그런데 케네디 사망 3년 뒤인 1966년 미 국가기록원.
존 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는데, 미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있던 형의 부검자료가 전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부검 자료와 함께 사라진 그것. 그것은 다름 아닌 존 F 케네디의 뇌였다. 존 F 케네디 사후 많은 사람들은 케네디를 암살한 배후 세력이 따로 있다고 추측했다. 일단 오스왈드는 범행 동기가 불분명했고 군 복무 시절 사격 실력이 형편없었기에 먼 거리에서 케네디를 저격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저격하며 사람들의 주위를 끄는 동안 다른 스나이퍼가 케네디의 머리를 쐈고 그것이 치명타가 돼 케네디가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뇌 부검 결과를 밝히라고 촉구했는데. 뇌에 남은 총상의 흔적에 따라 사격 방향, 즉 암살범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런 위원회은 오스왈드가 쏜 3발 중 후두부를 가격한 마지막 총알이 치명타가 되었다고 발표하면서도 정확한 뇌 부검 결과는 공개하지 않아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그러던 중 미 당국이 케네디의 뇌를 따로 보관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케네디의 부검을 담당한 베데스다 해군 병원(Bethesda Naval Hospital)에서 적출한 뇌를 스테인리스 통에 담아 밀봉한 뒤 미 국가기록원 케네디 전용 보안 방에 보관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뇌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케네디의 뇌는 케네디 죽음의 배후와 함께 미스터리로 남게 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47년 뒤인 2013년. 케네디가 사망한 뒤 50년 만에 놀라운 주장이 제기된다. 미 법무부 변호사 출신이자 역사학자로 케네디의 암살 사건에 대해 수십 년째 취재 중인 제임스 스완슨.
그에 따르면. 케네디의 뇌를 훔쳐 간 범인이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라는 것이다. 도대체 로버트 케네디가 왜 형의 뇌를 훔쳤다는 것일까.
존 F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미국 대통령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앓고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1947년 30살에 애디슨병(Addison's disease) 판정을 받았다. 10만 명 중 4명꼴로 발병하는 희귀 질환 애디슨병은 콩팥 위의 부실 피질에서 생산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며 혈압 저하로 인한 쇼크, 극심한 복부와 허리 통증, 급성 심부전 등을 유발시킨다.
이에 케네디는 주기적으로 부신피질호르몬제인 코르티솔을 맞아야 했고. 그의 비서들은 응급상황에 대비해 항상 주사기가 든 가방을 휴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만성 허리 통증과 설사로 고생했으며 극심한 통증을 견디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는 케네디.
1954년, 37살의 상원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는 애디슨병으로 인한 골다공증으로 허리 통증이 극심해지자 결국 척추 수술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척추 수술 후 해군 복무 당시 입은 수술이었다고 자신의 병을 위장한 케네디. 이는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 때문이었는데.
조지프 케네디는 자식들에게 항상 케네디가라면 육체와 정신이 완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딸 로즈메리가 정신질환을 앓자 케네디 가문에 정신질환자는 있을 수 없다며 당시 야만적이고 위험하다고 평가받던 전두엽 제거술을 받게 할 정도로 가문의 이미지에 집착했는데.
이에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존 F 케네디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해군에 입대했고. 애디슨병으로 극심한 허리 통증과 저혈압 때문에 고통스러웠음에도 이를 숨기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 대통령이 된 뒤 격무에 통증은 더욱더 심해졌지만 그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코르셋 구조의 철제 보호대를 착용하고 생활했다.
그런데 이 보호대가 오히려 독이 되었으니. 케네디 암살 당시 보호대 때문에 허리를 숙일 수 없어 결국 그의 목숨을 앗아간 세 번째 총알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통증에 시달려야 했던 케네디. 이는 훗날 케네디의 주치의였던 자넷 트래블과 케네디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한 맥스 제이콥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후 당국에서는 부검하라는 명령을 했고, 로버트 케네디에게 형을 부검할 때 뇌를 적출해야 하니 동의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 뇌를 적출하는 이유는 후대에 발전된 의학 기술이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의 원인을 더 명명백백 밝혀 줄 것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조치라는 이유였다.
그러자 로버트 케네디는 만약 미래에 발전된 의학 기술로 형의 병력을 밝혀 내기라도 한다면 형이 고통을 덜기 위해 마약에 의존한 대통령이라고 여겨질 것이라고 염려하였다는 것이다. 제임스 스완슨은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형 케네디 대통령의 병과 투약 약물을 숨기기 위해 뇌와 부검 자료를 훔쳤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정말 로버트 케네디가 존 F 케네디의 뇌를 훔쳤던 것일까. 그렇다면 케네디의 뇌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하고 5년 뒤인 1968년 6월 5일, 형에 이어 대선 후보로 나섰던 로버트 케네디 역시 캘리포니아주 예비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팔레스타인인 시르한 시르한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하면서 이 사실은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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