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1위. 할리우드에서 가장 출연료가 높은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 하지만 그에게는 누구보다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1975년 할리우드 유명 배우 존 보이트와 배우 마르셀린 버트란드의 둘째 딸로 태어난 졸리.
하지만 졸리가 태어나고 1년 후, 아버지인 존 보이트의 외도로 부모가 이혼하면서 졸리는 아버지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아래는 어린 시절 때의 안젤리나 졸리 사진들.
이혼 후 존 보이트는 어떠한 경제적 지원도 하지 않았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마르셀린 버트란드는 결국 8살이 된 졸리의 손을 잡고 다시 할리우드를 찾게 된다. 졸리는 단역을 맡은 어머니와 함께 인생 첫 영화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Lookin' to Get Out, 1988)에 출연하는데.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는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는 물론 그와 외도한 배우까지 영화에 캐스팅되었고 이런 상황에 혼란스러움을 느낀 졸리는 불안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한편 졸리의 어머니는 딸의 금발을 볼 때마다 전남편이 생각난다는 이유로 어린 딸의 머리를 짙은 갈색으로 염색해 버렸는데.
그날 이후 줄곧 어두운 머리색을 고수하게 된 졸리는 성격도 나날이 어두워져 갔다. 10대 시절 누구에게도 유대감을 느끼지 못한 졸리는 학교에서도 겉돌았고 두꺼운 입술과 긴 팔다리를 지녔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까지 당하자 학교를 자퇴한다. 그 후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데. 자해는 물론 자살 기도를 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진 졸리. 급기야. 삶을 포기한 그는 청부 살인업자를 고용한다.
그런데 청부업자는 한 달간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는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졸리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받아본 배려였다. 그 후 졸리는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 바로 연기였다. 1991년, 모델과 뮤직비디오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할리우드 영화 오디션까지 보게 되는데. 하지만 특유의 어두운 이미지 탓에 탈락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1995년. 고등학생 해커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해커스>(Hackers 1995)에서 드디어 첫 주연을 맡게 된 졸리.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조니 리 밀러(Jonny Lee Miller)와 사랑에 빠진 21살의 졸리는 급기야 1996년 그와 결혼식까지 올린다.
그런데 웨딩드레스 대신 하얀 셔츠에 가죽바지를 입은 파격적인 차림으로 결혼식장에 등장. 심지어 셔츠에는 자신의 피로 남편의 이름까지 새겨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 생활은 4년 만에 파경을 맞게 되는데. 이혼이 마무리된 2000년 졸리는 자신보다 20살 많은 배우 겸 감독 빌리 밥 손튼(Billy Bob Thornton)과의 재혼을 선언.
두 번째 결혼식에서도 서로의 피가 담긴 유리병을 목에 걸고 나타났으며,
그 후로도 남편과 서로의 묫자리를 선물하고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친오빠와 진한 입맞춤을 나누는 등의 기행을 벌이며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졸리의 아버지인 존 보이트는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딸을 비난했고. 이에 큰 상처를 받은 졸리는 안젤리나 졸리 보이트에서 아버지의 성인 보이트를 떼는 개명 신청을 할 정도로 더더욱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다. 그러던 2000년, 졸리에게 한 편의 영화가 들어오는데.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툼 레이더였다.
졸리는 이 영화에서 강인한 여전자인 라라 크로프트 역을 맡게 된다. 그런데!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 또한 영화에 캐스팅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두 사람의 관계는 애틋하기 그지없는 부녀지간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묘한 감정을 느낀 두 사람.
그렇게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 졸리 부녀는 결국. 애틋한 부녀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어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이후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 툼 레이더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비단 아버지와의 화해뿐만은 아니었다. 툼 레이더 촬영장이었던 캄보디아. 그곳에서 졸리가 목격한 것은 크메르 루주의 독재 정권에 의한 대량 학살로 여전히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자신보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본 졸리는 방황해 온 지난날을 후회하며 반성했고. 이에 그들을 돕기 위해 10억이 넘는 돈을 UN난민기구에 기부한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부모로부터 버려진 한 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안젤리나 졸리의 첫째 아들 매덕스였다.
매덕스를 입양한 졸리는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 술과 마약, 자해 등 그동안 자신의 삶을 파괴해 온 모든 것을 단번에 끊어버린다.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다가 2003년에는 베트남에서 팍스를,
2005년에는 에티오피아에서 자하라를 입양했고.
브래드 피드와의 세 번째 결혼으로 세 명의 자녀를 낳은 그는 총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된다.
아이들을 입양하고 진정한 가족을 만든 안젤리나 졸리. 출연했던 영화로 인해 어두웠던 과거를 떨쳐버린 그는 전 세계 전쟁과 기아 등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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