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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옛날 주유소 기름값과 서비스 풍경

ˍ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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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기름값이 폭등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가 폭등은 처음이 아니죠. 지금으로부터 50년을 거슬러 올라간 1970년대 유가가 크게 오른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석유 파동. 석유수출국기구 오펙(OPEC)의 합의로 기름값이 오른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석유 가게 앞에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석유파동은 1973년의 아랍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 정책과 1978년의 이란 혁명 이후 석유 가격 폭등으로 발생했죠. 호롱불에 곤로를 썼던 시절 석유는 생활 필수품이라서 타격이 컸죠.

 

[유기준 회장 / 한국주유소협회 : 오일쇼크가 많이 왔었죠. 그때 조그만 탱크를 밑에다 묻어서 거기서 모터를 설치를 해서 기름을 퍼서 아주머니들이 통을 가져오면 판매를 하고 했었죠]

 

휘발유 사용이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소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유기준 회장 / 한국주유소협회 : 우리나라는 기름이 한 방울도 안 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업 제한을 했었습니다. 기름 소비를 덜 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죠]

 

그리고 석유 파동이 지나간 후 등장한 지금은 감히 상상도 못할 아래의 숫자는 바로 기름값인데요. 기름 1L에 182원이라는 가격.

그리고 2002년 9월에는 경유 1리터 당 649원이었네요. 아래는 40년간 주유소를 운영한 사장님의 포스기 내역입니다. 20년 전에도 경유 가격은 세 자릿수였죠. 

[김종화(주유소 운영 40년) : 1990년대 초에는 7천 원 정도 대략 주유를 하면 가득 차고 그랬습니다]

 

1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가득을 외쳤던 시절. 지금 물가와는 차이가 있지만 정말 상상도 못할 가격이죠. 그때 그 주유소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90도입니다. 주유소 사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후 치열해진 경쟁 때문에 등장한 서비스 일환인데요.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주유소들의 운영 전략이었죠.

[김종화(주유소 운영 40년) : 아르바이트생을 7명 두고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차량이 들어오면 유리창을 닦아준다든지 휴지통을 비워준다든지 그런 서비스를 했습니다. 너무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까]

 

지금은 감히 상상해서도 안 되는 서비스 전략까지 등장했는데요. 바로 미인계 마케팅.

[김종화(주유소 운영 40년) :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 행사도 하고 이런 일을 많이 했잖습니까? 그런데 시골이다 보니까 저희도 몇 번 부른 기억이 나는데, 손님들이 오히려 안 들어와요. 민망스러워서. 오히려 매출이 줄어드는 그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가속화되는 경쟁 속에 등장한 모습. 손님을 맞는 직원이 신고 있는 건 바로 롤러스케이트입니다. 마치 이곳이 롤러장인 것처럼 슝슝 거침없이 주유소를 누비는 직원들.

대체 왜 주유소에서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걸까요? 당시 이렇게 일했던 직원의 말에 따르면 첫 번째로는 다리가 안 아파서 편하고, 두 번째로는 스피드가 있어서 손님들에게 서비스도 빨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신속하게 움직여서 고객들한테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거죠.

 

이 무렵 전국에 주유소는 약 1만여 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치열해진 건 경품 경쟁이었습니다.

상품 경쟁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주유 후 행사에 참여하면 고가의 가전제품을 주기도 했다고요.

심지어 해외 여행을 보내준다는 곳도 있었네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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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준 회장 / 한국주유소협회 : 종업원이 많으면 이익 창출이 적기 때문에 너무나 지금 가격 경쟁이 심해서 가격이 타이트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셀프운영을 하는 겁니다.]

 

1992년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셀프 주유소가 최초로 생겼습니다. 직접 주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성공 여부가 당시 미지수였던 이 셀프 서비스는 어느새 전국적으로 퍼졌습니다. 심지어 대도시에는 일반 주유소보다 이 셀프 주유소가 더 많다고요.

고공행진 중이던 유가 폭등의 시기를 지나 정부의 규제 완화로 주유소가 우후죽순 생기던 그 시절, 다양한 서비스는 주유소 간 경쟁의 부산물이었지만 그 덕분에 잠시나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은 아니었을까요?

 

도장 몇 개 모으면 생수도 주고 라면도 있었던 것 같고 대박인 건 쌀도 줬습니다. 휴지, 식용유 등등 주유만 해도 마치 마트 다녀온 것처럼  생필품을 가득 마련할 수 있었는데요. 그때 주유소에서 볼 수 있었던 이런 서비스 전쟁,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의 단편적인 모습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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