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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를 수사, 재판하다가 암살된 이탈리아 팔레르모 시의 판사님들. 너무나 슬픈 사건.

ˍ 202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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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 위치한 인구 60만의 항구 도시 팔레르모. 언젠가부터 이 도시에서 강력 범죄가 일상이 되기 시작한다. 공산당 지도자인 피오 라 토레가 살해당하고 심지어 시칠리아 주지사 피에르산티가 암살되는 등 무고한 시민들까지 길을 가다가 총에 맞거나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는 마피아.

 

마약 밀매를 두고 세력 다툼을 벌이던 마피아 조직들이 방해가 되는 상대 조직과 그 가족, 정치인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도시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악의 범죄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10여 년 후. 팔레르모에서 마피아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는데. 그것은 두 명의 판사가 치열한 노력을 벌인 덕분이었다.

팔레르모 출신의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조반니 팔코네와 파올로 보르셀리노. 이들은 1980년 안티 마피아라는 수사팀에 합류하게 됐는데, 마피아가 일으킨 수많은 사건 자료를 보며 우리가 어릴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라고 분노하며 마피아의 무법천지가 된 팔레르모를 지키기로 다짐한다. 

 

판사가 검사의 역할까지 겸임해 공소권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이런 권한을 바탕으로 몇몇 판사들이 힘을 합쳐 마피아를 소탕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안티 마피아 팀의 수장 로코 치니치 판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로코 치니치 판사와 폭파된 차량

수사에 불만을 품은 마피아들이 그의 차량에 폭탄을 설치해 차량을 폭파시킨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증거가 없었기에 기소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선배 판사의 죽음을 계기로 두 사람은 마피아 처단에 목숨을 걸기로 다짐한다. 하지만 수사는 쉽지 않았는데, 도청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비밀 수사를 선택한다. 법원 대신 작은 아파트를 대여해 수사를 이어간 두 사람은 사무실 위치가 드러날까 봐 외출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조반니는 결혼식까지 비밀리에 진행할 정도였다.

조반니와 아내

하지만 겨우 접촉해 확보했던 증인인 마약 밀매상이 마피아에게 살해당하면서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그러던 1984년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보이게 되는데 바로 마피아의 주요 간부 토마소 부셰타가 체포된 것이었다.

토마소 부셰타

그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마피아의 조직 구조부터 치밀한 범죄 수법까지 모두 알고 있는 인물로 당시 조직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나 부하들은 물론 아들까지 살해당한 상황이었는데, 두 사람은 토마소를 끈질기게 설득해 정보원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손에 넣으며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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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확보한 증거 자료는 무려 8000페이지 분량.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발로 뛴 결과물로 마침내 1986년 475명의 마피아 조직원 검거에 성공하면서 재판에 세울 일만 남게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법원에서 재판을 한다면 남은 마피아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고 대규모 수용이 가능한 곳이 필요했다. 대규모 재판을 위해 피고인 475명을 동시에 수용하면서도 마피아의 테러에 대비할 수 있는 장소를 구해야 했던 것인데,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팔레르모의 우치아르도네의 교도소 중 일부를 벙커로 개조, 여기서 재판을 열기로 한 것이다.

 

교도소 벽면에 철근 콘크리트를 더해 미사일과 폭탄 공격에도 끄떡없는 벙커를 만들었다. 증인석은 혹시 모를 총격에 대비해 내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도 끄덕없는 방탄 유리로 만들었으며 벙커 밖으로는 헌병들을 기관총으로 무장시켜 배치했는데 이렇게 만반의 준비 끝에 드디어 1986년 2월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세기의 재판. 재판 결과 법정에서는 475명 중 338명이 유죄. 19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이들의 총 형량이 무려 2665년에 달했는데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로 마피아 조직원을 대거 소탕한 이 재판은 조반니와 파올로 두 명의 판사가 정의를 위해 목숨 바쳐 이루어낸 결과였다.

 

그런데 얼마 후, 마피아 수사로 인해 바빠서 오랜만에 아내와 여행을 떠나게 된 조반니 부부. 그런데 조반니 부부가 탑승하고 있던 차량이 고속도로를 지나던 그 순간 굉음을 일으키며 터진 폭탄. 당시 지진계에 기록될 정도로 컸던 폭발로 조반니 부부는 목숨을 잃고 만다. 당시 폭발로 피해를 입은 자동차들.

조반니 부부

재판에서 미처 기소되지 않았던 다른 마피아 조직원들이 도로에 0.5톤의 폭탄을 설치해 부부를 살해한 것이었다. 당연히 다음 타깃은 파올로로 추측되는 상황. 경찰은 무장한 경호원 5명을 붙여주며 사고에 대비했는데, 하지만 2개월 후, 파올로 판사 역시 마피아가 차량에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며 목숨을 잃고 만다. 아래가 당시의 현장. 

정의로운 두 판사가 끝내 살해당한 초유의 상황. 팔레르모 시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고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했다.

그런데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두 판사의 죽음에 분개한 시민들은 안티 마피아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이를 계기로 마피아와 연계된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된 것이다. 그 결과 무려 5000명이 넘는 정재계 인사들이 부패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고 그중 120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됐는데, 얼마나 많은 정치인이 연루됐던지 무려 400곳이 넘은 지방의회가 해산됐고 이탈리아 거대 정당 두 곳이 아예 공중 분해됐을 정도였다.

 

조반니와 파올로의 죽음이 부패했던 이탈리아 사회를 물갈이한 것으로 이후 마피아의 세력은 급속도로 쇠퇴했고 범죄도시였던 팔레르모 역시 평화를 되찾게 된 것이다. 마피아와의 전쟁에 인생을 바쳤던 두 판사, 조반니와 파올로. 팔레르모 시민들은 지금도 이들의 희생을 기리며 매년 추모식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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