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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사고로 아내를 잃고, 화재로 두 아들까지 잃은 가수 로이 오비슨. 영화 프리티 우먼 주제곡 가수.

ˍ 202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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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귀여운 여인. 당시 영화와 함께 주제곡인 <오, 프리티 우먼 Oh, Pretty Woman> 역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도 명곡으로 손꼽히는 이 노래.

그런데 정작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비운의 스타로 불렸다.

 

백만장자와 평범한 여성의 사랑을 그린 영화 귀여운 여인.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전 세계적으로 4억 6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여주인공 줄리아 로버츠가 쇼핑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오, 프리티 우먼>은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영화와 절묘하게 어울리며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이후 영화와 함께 명곡으로 꼽혔다.

그런데 이 노래가 발표된 시기는 무려 영화 개봉 26년 전인 1964년. 노래를 작곡하고 부른 건 로이 오비슨이라는 미국의 로큰롤 가수였다.

불과 8살 때 작곡을 하며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로이 오비슨. 그는 1956년 자작곡 <오비 두비 OOBY DOOBY>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지만 사실 가수보다는 작곡가로 성공하길 원했다.

그는 평소 존경하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신이 만든 곡을 불러주길 원했다. 로큰롤의 제왕이라 불렸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하운드 독(Hound Dog),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당시 미국의 문화 아이콘으로 굴림하던 가수였다.

 

하지만 이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거절당했고 이후에도 미국의 인기 컨트리 듀오 에벌리 브라더스 등 여러 뮤지션들에게 연달아 퇴짜를 맞았다. 할 수 없이 그 곡을 자신이 직접 부르게 된 로이 오비슨. 이 노래가 바로 <온니 더 론리(Only The Lonely)>였다.

우수에 찬 멜로디와 부드러운 고음이 돋보이는 이 곡은 놀랍게도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는 <크라잉(Crying)>, <인 드림스(In Dreams)> 등 다수의 곡들을 발표하며 점점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그 이유는 로이 오비슨은 선천적으로 엄청난 난시였고 알이 두꺼운 알경보다는 늘 도수가 있는 진한 색의 선글라스를 착용,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당시는 화려한 춤사위와 경쾌한 음이 주축인 로큰롤이 주류를 이루던 때. 주로 서정적인 로큰롤을 부르던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아류로 여겨졌고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1964년 그의 인생을 바꿀 노래가 탄생한다. 아내 클라오 데트의 애교에 영감을 받은 로이는 그 자리에서 40여 분 만에 곡을 완성하는데. 이 노래가 바로 <오, 프리티 우먼>이었던 것이다. 

이곡은 미국 빌보드 차트와 영국 차트에서 동시에 1위에 오르며 당시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고 그의 앞길에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1966년, 모처럼 쉬는 날이었던 어느날. 기분전환을 할 겸 오토바이를 타기로 한다. 내켜하지 않는 아내를 오토바이에 태운 로이 오비슨. 오토바이 주행 중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아내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곡 <오, 프리티 우먼>을 들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린 로이. 하지만 그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년 후 영국 투어 공연을 하던 중 미국 자택에 불이 났고 집 안에 있던 두 아들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까지 잃고 커다란 상실감에 어떤 무대에도 오르지 못한 로이 오비슨.

그런데 그를 둘러싸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가 보험금을 노리고 가족을 일부러 살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억측이 난무한 세간의 시선에 시달려야 했던 로이. 그는 하루하루를 술에 의존한 채 점점 망가져 갔고 그렇게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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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폐인처럼 지내던 로이를 찾아온 한 사람. 그는 엘리펀트 맨, 듄으로 유명한 영화 감독 데이비드 린치로 당시 준비하던 영화 주제곡으로 로이 오비슨의 노래를 사용하고 싶다며 간곡히 요청했다. 결국 그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간곡한 부탁에 자신의 노래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1986년 그렇게 완성된 영화가 바로 <블루 벨벳 Blue Velvet>이었고 영화에 사용된 로이의 노래는 <인 드림스 In Dreams>였다. 이 영화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제59회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로이 오비슨의 음악 역시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는 조지 해리슨, 밥 딜런 등 후배 가수들과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 무대에 올랐고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멈춰 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걸 느꼈다.

그렇게 20여 년 만에 새 앨범을 준비하기로 결심한 로이 오비슨. 하지만,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나이 52세, 새 앨범이 발매되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사실 오랜 시간 술에 의존해 왔던 그는 이미 한 차례 심장 수술까지 받은 상태였지만 다시 음악을 시작한다는 기쁨으로 몸을 혹사시켰던 것이다.

 

사람들은 평생 슬픔 속에 살다가 재기를 눈앞에 두고 끝내 눈을 감았던 그의 불후한 삶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리고 유작이 된 로이 오비슨의 새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톱5에 진입. 그가 낸 앨범 중 가장 큰 사랑을 받았으며 사후에 그래미상 남성 보컬상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1990년 영화 귀여운 여인의 주제곡으로 오, 프리티 우먼이 사용되며 그의 음악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듣게 된 것이었다.

밝고 경쾌한 노래와는 달리 비운의 스타였던 로비 오비슨. 비록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음악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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