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전 신문에도 있는 선풍기병
아주 오래전부터 더운 여름철이 되면 들려오는 소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 이런 선풍기 괴담인데요. 창문을 조금이라도 열어둬야 한다든지 아니면 선풍기를 한 2~3m 떨어뜨려놓고 사용해라, 이런 일종의 예방책도 많았는데요. 참 오랫동만 말 많은 이 소문,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까요?
여름만 되면 바람처럼 떠도는 이 소문.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소문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타이머를 맞춘다거나 바람의 세기를 좀 줄인다거나 뭔가 하나라도 하게 되는데 그저 단순한 괴담으로 여기기에는 참 찝찝했었죠.
선풍기를 틀고 자면 산소가 부족해서, 호흡이 가빠져서, 체온이 떨어져서 결국 죽는다는 이야기, 과연 남의 일이라고만 여겨도 될까요? 뜬구름 잡는 소리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대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궁금하네요. 아래는 옛날 신문기사들인데요. 1920년대 중외일보 기사에서도 선풍기병을 볼 수 있으니 꽤 오래전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죠.
그리고 아래 기사는 1932년 7월 1일 동아일보 기사인데 선풍기 때문에 자고있을때 죽었다는 기사네요.
저체온증을 일으킨다는 소문
그런데 수상한 건 이런 사건, 사고가 여기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난다는 겁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이를 한국인들의 미신으로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일명 선풍기 괴담의 핵심은 두 가지. 그 첫 번째는 선풍기 바람을 오래 쐬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거죠.
[강병원 교수 / 충북대학교 물리학과 : 우리 몸하고 온도가 다른 공기의 사이에는 서로 온도 차이가 적게 나는 공기 막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자꾸 바람이 불어와서 공기 막을 밀어내서 온도 변화를 시키는 거죠.]
바람이 닿을 때마다 경계를 이루는 그 얇은 막에 영향을 준다면 저체온증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준비했습니다. 두 개의 아이스크림 중에 한쪽에만 바람을 쐬게 해 표면을 덮은 막의 변화를 살펴볼 텐데요.
불과 몇 분 사이에 차이는 극명했습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선풍기 바람에 노출된 쪽은 빠르게 녹아 사라진 겁니다. 냉기가 빠져나가는 데 바람이 영향을 끼친 거죠.
실험결과 저체온증이 오지는 않는다
이런 속도라면 사람의 체온도 재빨리 떨어뜨려 결국 저체온증을 유발하지 않을까요?
[이승남 가정의학과 전문의 : 저체온증은 우리 몸 온도가 지금 온도보다 8°C 이하로 떨어져야 해요. 그렇게 체온이 빨리 떨어지면 당뇨병 환자라든지 심장병, 고혈압 있는 분들은 혈관이 잘못되어서 사망할 수 있습니다.]
체온의 급격한 변화는 건강의 적신호. 그러면 선풍기를 이제라도 안 쓰는 게 상책일까요?
[강병원 교수 / 충북대학교 물리학과 : 선풍기 쏘여서 저체온증 와서 사망하게 된다면 자는 사이 몸 온도가 8~9°C 정도 떨어져야 하는데 선풍기 자체가 냉매가 있어서 에어컨처럼 차가운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온도의 바람을 불어주는 역할만 하는 겁니다.]
선풍기가 공기를 순환시킬 수는 있어도 주변 온도를 낮춰주지는 못하죠. 하지만 선풍기 앞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으면 우리는 분명 시원함을 느끼는데,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실험을 통해서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선풍기 바람과 피부 온도,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선풍기를 쐬기 전의 피부온도는 아래와같이 31.4도였습니다.
그다음 선풍기를 틀어놓고 1시간이 지난후의 체온은 30.9도였습니다.
그리고 선풍기를 켜고 6시간 잠을 잔 후 체온은 30.3도였습니다.
[강병원 교수 / 충북대학교 물리학과 : 항온동물이라 하는 인류의 몸은 체온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어서 선풍기를 밤새 쓰고서 사망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선풍기 바람이 피부의 열을 빼앗아 저체온증이 올 확률은 거의 없다는 얘기죠.
저산소증으로 죽는다는 소문
소문의 두 번째는 선풍기 바람을 오래 쐬면 산소가 부족해 죽는다는 겁니다.
[오재국 이비인후과 전문의 : 좁은 공간에서 환기를 안 하면 산소가 부족해지고 이산화탄소가 많다 그러면 그런 상황이 질식사를 유발하는 거죠. 그때 선풍기를 켜게 되면 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죠.]
아주 좁은 방에 선풍기를 오래 켜두면 숨이 막히거나 산소가 없어서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선풍기 바람이 호흡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산소포화도를 측정해봤습니다. 아래와같이 98이 나왔는데요.
과연 98이라는 수치는 잠을 자는 6시간 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측정결과 산소포화도는 아래 사진과 같이 변화가 98에서 97로 거의 그대로입니다. 산소 공급이 원활한 거죠.
공기중의 산소 농도 변하지 않아
[오재국 이비인후과 전문의 : 실내공기 중 산소가 전혀 없는 상황이 발생해야만 질식사가 가능한데요. 우리가 특별한 질환이 없는 상태에서 적절한 환경에서의 선풍기 사용은 질식사 같은 위험은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풍기를 켜고 잔다고 해서 공기 중 산소 농도가 변하는 일은 없습니다.
지병이 있거나 과음후에는 위험
그런데 최근 해외에서는 선풍기를 둘러싼 새로운 소문이 또 등장했습니다. 선풍기 바람 때문에 공기 건조, 근육통, 알레르기 반응 등 갖가지 질병이 생길 수 있다는데요.
[이승남 가정의학과 전문의 : 천식이 있는 사람이 선풍기를 틀었는데 먼지 같은 것이 천식 발작을 일으켜서 숨을 못 쉬어서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어요. 또 한 가지 술을 많이 먹고 자는 경우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서 건조해졌는데 심장혈관이 수축해서 혈압이 확 올라갈 수가 있어요. 그럴 경우 심장이 안 좋은 사람은 심장 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지병이 있다거나 과음 후라면 혈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니 선풍기 바람 정말 조심해야겠네요.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승남 가정의학과 전문의 : 바람이 불면 우리 몸에 있는 수분이 날아가거든요. 수분이 날아가면서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시원하다고 느끼는 건데요.]
선풍기 바람이 가져가는 건 열기만이 아니다? 피부의 수분까지 빼앗아간다는 소문, 과연 사실인지 피부 수분도 측정으로 직접 확인해 봤는데요.
위와같이 불과 3시간 만에 빼앗긴 촉촉함.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그 후라는데요.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이승남 가정의학과 전문의 : 얼굴 수분이 많이 날아가면 피부 노화가 빨리 올 수 있어요. 콧물이나 눈물에는 면역항체가 들어있어요. 그게 말라버리면 병이 잘 걸립니다.]
그렇다고 열대야에 땀 뻘뻘 흘리며 잘 수는 없잖아요. 깨끗한 실내에서 쐬는 적당한 바람은 건강에 좋답니다.
[오재국 이비인후과 전문의 : 나의 기초체온, 심부체온이 높게 되면 잠이 안 옵니다. 선풍기를 잘 활용하면 수면 전후 기전을 잘 활용하여서 조금더 양질의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선풍기 괴담 아직도 믿는 분들은 없으시죠? 마음 편히 선풍이 바람 쐬며 올해는 더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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