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조카 사위이자 명문가 유수포프 가문의 후계자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

화려함의 끝판왕, 유수포프궁에서 매일 파티를 즐기며 사교계를 군림하던 그가 원수처럼 여긴 단 한 사람이 바로 라스푸틴이었다.

1900년대 초, 러시아 황제 일가의 신임을 독차지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라스푸틴. 떠돌이 수도승이었던 그가 황제의 측근이 된 건 기막힌 우연 덕분이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하나뿐인 아들 알렉세이 황태자.

알렉세이 황태자는 혈우병 환자로 피가 응고되지 않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라스푸틴이 황태자를 위해 기도한 후 거짓말처럼 증상이 호전됐던 것이다. 이때부터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은 라스푸틴은 인사권은 물론 국가의 주요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막강한 힘을 휘둘렀고 황궁에 많은 여자들과 20여 명의 사생아까지 두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황제 일가는 라스푸틴을 신처럼 떠받들며 부적처럼 그의 사진을 들고 다녔고, 심지어 1차 세계대전당시 니콜라이 2세가 독일과의 평화 협정을 위해 전쟁터를 찾았을 때도 라스푸틴의 말 한마디 때문에 전쟁을 매듭지으려던 계획을 뒤엎고 독일과 전면전에 돌입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라스푸틴의 말과 달리 전쟁에서 대패한 러시아. 결국 국가 재정이 파탄나서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고 시민들은 물론 귀족들까지 라스푸틴에게 분노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장한 유수포프 공작을 보게 된 라스푸틴. 딸을 간절히 원했던 유수포프의 부모는 어린 시절 그에게 여장을 자주 시키곤 했는데 사람들이 소녀로 착각할 정도로 여장이 어울렸던 그는 성인이 된 후에도 은밀히 여장을 즐기고는 했던 것이다.

심지어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왕자 시절 여장한 유수포프를 보고 한눈에 반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라스푸틴은 여장한 유수포프를 보고 면전에서 치욕을 준 것도 모자라 그의 여장 사실을 황궁에 소문내고 다니기까지 했고, 그렇게 유수포프의 이미지는 모두의 존경을 받던 20대의 젊은 훈남 공작에서 여장이 취미인 기이한 남성으로 추락하고 만다.
심지어 라스푸틴은 유수포프의 아내 이리나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져 그를 더욱 분노케했다. 그런데 1916년, 갑자기 태도를 바꿔 라스푸틴을 집으로 초대한 유수포프 공작. 그는 라스푸틴을 극진하게 대접하며 음식을 권했는데, 사실 이 모든 건 유수포프의 암살 계획이었다.
러시아제국을 위해서라며 라스푸틴의 국정농단에 불만을 품은 황족들을 설득했던 유수포프. 하지만 사실은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라스푸틴을 죽이려 했던 것으로 라스푸틴이 먹는 음식에 치사량의 청산가리를 탄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스푸틴은 청산가리를 먹은 지 2시간이 지나도록 멀쩡해서 결국 그를 권총으로 쏜 뒤 한겨울 차가운 강에 던져버렸던 것이었다.

유수포프 공작은 살인죄로 체포됐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국정 농단으로 러시아를 몰락하게 한 공공의 적을 죽인 만큼 위대한 암살자로 추앙받았고 결국 사형 대신 유럽으로 추방되며 그렇게 유수포프의 복수는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그런데 16년 후. 이미 사망한 라스푸틴에게 또다시 복수를 다짐하는 유수포프. 뜻밖에도 그는 할리우드 대형 영화 제작사 MGM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개봉한 영화 <라스푸틴과 황후(Rasputin and the Empress)>.

이 영화는 라스푸틴과 그에게 놀아난 황제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영화에는 황족인 나타샤가 라스푸틴에게 성폭행 당한 후 강제로 그의 첩이 되는 장면이 담겨 있었는데, 나타샤라는 가명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나타샤는 바로 니콜라이 2세의 조카이자 유수포프의 아내 이리나였던 것이다.


영화사 측은 나타샤가 이리나와는 무관한 가상의 인물이라고 주장했지만 패소했고 결국 유수포프는 총 10만 파운드, 현재 가치 60억 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받았다. 그런데 유수포프의 소송이 할리우드에 끼친 뜻밖의 결과. 바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이 문구.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할 경우 명예훼손 소송을 피하기 위한 면칙 조항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포함됐다는 문구를 필수로 넣게 된 것이다.
한편 라스푸틴에 대한 개인적 복수심 때문에 그를 살해하고 라스푸틴 덕분에 막대한 보상금까지 챙긴 유수포프. 그는 몰락한 러시아 제국 출신 귀족임에도 부유하게 생활하다 1967년 80세에 사망했다고 한다.

'항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라면을 찬물에 바로 넣고 끓여야 맛있다는데 진짜일까요? (0) | 2022.11.21 |
|---|---|
| 도끼를 든 주부들로부터 시작된 미국 금주법의 역사 (0) | 2022.11.15 |
| 미국에서 스토킹 방지법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22살 여배우의 죽음 (2) | 2022.11.15 |
| 센나잎의 센노사이드는 다이어트에 효과가 없다고 하네요. (0) | 2022.11.14 |
| 금융투자소득세란 무엇이며, 왜 논란일까요? (0) | 2022.11.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