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년 전 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술의 역사. 그러나 술이 있는 곳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법. 이에 1920년대 미국에서는 전 지역에서 술의 제조와 판매는 물론 운송, 수입, 수출까지 전면 금지한 금주법을 시행했는데, 금주법은 국가가 법으로 음주를 원천 봉쇄가 최초의 사례이다.
그런데 금주법의 시작에는 이 여인이 있었다. 1890년 어느 날 미국 캔자스주의 한 술집에 나타난 한 여인.

180cm의 큰 키에 검은옷을 입고 한 손에 성경을 다른 손에는 손도끼를 든 여인은 다짜고짜 술을 마시지 말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더니 급기야 손도끼로 술집을 마구 부숴대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캐리 네이션(Carry Nation). 손도끼를 든 여인이라 불리던 열혈 금주 운동가였다.
1867년 의사인 찰스 글로이드와 결혼했지만 알코올중독자였던 남편 때문에 고생하다 1년 반 만에 사별했던 캐리. 그후 목사인 데이비드 네이션과 재혼해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그녀는 음주를 죄로 여기는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술이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든다.
그런데 당시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캐리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의 음주로 인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들도 술에 대해 큰 반감을 품고 있던 것. 이에 그들과 뜻을 모아 금주 운동을 시작한 캐리.

처음에는 단순히 찬송가를 부르며 금주를 독려하는 수준이었지만 효과를 볼 수 없자, 결국 손도끼와 둔기를 이용한 과격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1890년부터 무려 20여년 간 미국 전역의 술집을 돌며 기물을 부수는 방식으로 술을 팔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한 캐리 네이션.
30번 넘게 경찰에 체포됐지만 풀려나면 다시 활동을 이어갔고 손도끼를 기념품으로 만들어 판매해 벌금을 충당할 만큼 지지자들도 급증한다. 그러던 1911년, 캐리는 금주에 대한 연설을 하던 중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마는데, 그녀의 뜻을 이어받은 행동가들이 금주 운동을 계속한 덕분에 1920년 미 전역에서 금주법이 시행된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사람들은 법망을 피해 여전히 술을 마셨는데 악명 높은 마피아가 밀주를 만들어 유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피아와 관련된 예상치 못한 인물도 있었다.
1961년 존F 케네디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뜻밖의 의혹이 제기됐다.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셉 케네디(Joseph Kennedy)의 과거 행적에 관한 것. 그는 컬럼비아 신탁 은행의 최연소 은행장 출신으로 1920년대부터 백만장자의 반열에 이른 인물이다.

하지만 미국의 5대 마피아 중 하나인 루치아노 패밀리의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Frank Costello)에 따르면 금주법 시행 후 밀주 판매로 돈을 벌던 그에게 조셉 케네디가 직접 찾아와 술 사업을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후 함께 밀주를 제조 유통하며 최고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었다는 조셉 케네디와 코스텔로.

이후 1933년, 금주법이 해제된 후 조셉 케네디는 위스키 수입 회사를 운영했는데 이 또한 코스텔로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살인자라는 별명의 오니 매든(Owney Madden), 영화 대부의 모델 조셉 보나노(Joseph Bonanno) 등 내로라 하는 마피아도 당시 조셉 케네디와 술 거래를 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또한 1920년대 후반, 밀수된 술을 보관하던 창고에서 11명의 마피아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창고는 물론 보관돼 있던 밀주의 주인이 바로 조셉 케네디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조셉 케네디가 마피아와 손을 잡고 밀주를 제조, 유통해 큰돈을 벌었다는 의혹이 일었고 그 돈과 마피아 인맥을 이용해 아들인 존F.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렇듯 혼란스러웠던 금주법 시대. 그런데 이 법이 무용지물이었던 곳이 있다. 바로 백악관이었다. 금주법 시행 직후인 1920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워런 하딩(Warren G. Harding).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술을 마시며 카드 게임을 하는 것. 당시 백악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영부인이 직접 폭탄주를 만드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1929년 대통령이 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역시 술고래이긴 마찬가지.

그는 미국 법이 적용되지 않는 벨기에 대사관까지 찾아가 술을 마셨다고 하는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통령마저 술을 마시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경제 대공황으로 세수 부족에 시달리면서 금주법의 존폐가 화두로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1932년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금주법 폐지를 제1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경쟁당인 공화당은 과거 금주법 제정을 주도했기에 차마 금주법 폐지를 언급할 수 없었는데, 루스벨트가 이 상황을 적극 이용한 것이다.

사실 루스벨트의 이 전략에는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다. 기업이 아닌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 정책을 지향하는 루스벨트와 최소한의 정부 개입을 원하는 대기업은 상극 중의 상극. 그러나 밀주 거래로 거대해진 지하경제 때문에 피해가 극심했던 대기업이 금주법 폐지를 조건으로 루스벨트의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그야말로 술심 하나로 의기투합한 적과의 동침인 셈.
결국 압도적인 표 차로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그는 당선되자마자 금주법 폐지를 골자로 한 개정안에 서명했고 맥주회사에서는 백악관으로 맥주 한 트럭을 선물했다고 한다. 평소 마티니 애호가로 유명했던 루스벨트는 마음껏 술을 들이켰고 그렇게 금주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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