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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같은 발퀴레 작전(그래서 실제로 톰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로 만들어진 사건)

ˍ 202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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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고 나치를 장악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미리 막기 위한 대비책을 세우는데, 그것이 발퀴레 작전이다.

 

발퀴리 작전이란 히틀러가 가장 좋아한 음악가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따온 이름으로 기습공격, 쿠데타 등 비상사태 발생시 히틀러의 명령이 없더라도 독일 전역에 예비군을 총 동원해 반란을 진압하게 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이 작전이 오히려 히틀러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1944년, 나치군의 주요 간부들이 발퀴레 작전을 이용해 히틀러 암살을 모의한 것이다.

 

이 암살 작전의 중심에는 히틀러의 충성스러운 심복이 있었다. 1944년 나치군 참모 장군 클라우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검은 오케스트라단'을 찾아간다.

클라우스 슈타우펜베르크(Claus von Stauffenberg)

검은 오케스트라단은 히틀러에 반대하는 나치군의 장성들이 조직한 반나치 단체로 그 수만 해도 200여 명. 한때는 히틀러를 위해 싸우다가 왼쪽 눈, 오른팔, 왼 손가락을 잃을 만큼 충성했던 클라우스였지만 유대인 학살 등 히틀러의 잔혹한 만행에 경악, 검은 오케스트라단에 합류한 것이다.

 

당시 검은 오케스트라단은 수차례 히틀러 암살을 시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던 상황. 클라우스는 그 대안으로 발퀴레 작전을 제안하는데, 그의 계획은 이러했다. 히틀러의 발퀴레 작전을 역이용하는 것이었다. 일단 히틀러를 죽인 뒤 이걸 자신들이 아닌 나치 친위대의 쿠데타로 위장하고, 그다음 발퀴레 작전을 발동해서 전군이 소집되면 나치 친위대를 모조리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나치를 없앤 뒤 새로운 독일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은신처에 숨었는 히틀러를 어떻게 없애냐는 것. 그러자 히틀러 암살마저 제 손으로 해내겠다고 단언한 클라우스. 1944년 7월 20일 드디어 디데이가 다가온다. 거사 장소는 독일어로 늑대를 뜻하는 볼프샨체(Wolfschanze). 당시 히틀러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이곳에서 열리는 나치 주요 간부들과의 회의 때 뿐이었기 때문이다.

 

암살 도구는 바로 폭탄. 검문을 피하고자 금속이 아닌 유리로 만든 폭탄으로, 캡슐을 터트리면 10분 후에 폭발하는 방식이었다. 클라우스는 히틀러 바로 옆에 폭탄이 든 가방을 내려놓은 후, 미리 말을 맞춘 대로 전화를 핑계 삼아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12시 42분에 예정대로 폭탄이 폭발해 볼프샨체는 아수라장이 된다.

폭발 후 볼프샨체의 내부

 

그런데 오후 6시 28분 실시간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히틀러의 목소리. 히틀러는 자신이 가벼운 찰과상과 화상만 입었을 뿐 멀쩡히 살아 있고, 나를 배신하고 반역한 자들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라고 선언한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원래 볼프샨체의 지하의 밀폐된 콘크리트 벙커에서 열린 예정이었던 회의였는데 히틀러가 덥다면서 창문이 많아 환기가 잘 되는 곳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갑자기 회의 시간마저 30분 앞당긴 히틀러.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클라우스는 회의 시작 직전에야 폭탄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손가락 3개만으로 폭탄을 작동시켜야 했던 클라우스가 조급한 마음에 2개의 폭탄 중 하나만 작동시킨 것이다. 예상보다 폭탄의 위력이 약해진 상황.

 

그런데 암살에 실패한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었다. 폭발 직전 히틀러 가까이 놓여진 가방을 보고 걸리적 거릴까봐 두꺼운 칸막이의 반대쪽으로 옮겨놓은 군인이 있었던 것이다. 이 칸막이가 방패가 되면서 히틀러는 폭탄의 직접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었고, 그 대신 4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클라우스를 포함해 검은 오케스트라단 200여 명이 사형당했고 이들의 가족, 친척 등 암살과 무관한 4980명까지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그중 히틀러가 유일하게 살려준 사람이 있었다. 나치 독일의 공군을 대표하던 군인 '멜리타 슈타우펜베르크(Melitta Schenk Gräfin von Stauffenberg)'.

멜리타 슈타우펜베르크( Melitta Schenk Gräfin von Stauffenberg)

 

나치 공군에서 여자 대원은 '한나 라이치'와 '멜리타 슈타우펜베르크' 단 둘뿐이었는데 그 중의 한명으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파일럿이자 당시 나치군이 사용하던 모든 전투기의 항법 제어 시스템을 개발한 유능한 항공 공학자였다. 그런데 멜리타의 남편 알렉산더가 발퀴레 작전의 주요 인물 클라우스의 친형이었던 것이다.

 

이에 작전 실패 후 멜리타와 알렉산더는 반역자의 가족으로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나치 공군의 한 대령이 히틀러를 설득한 덕분에 멜리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멜리타는 남편 알렉산더의 목숨도 살려달라며 애원한다. 결국 멜리타가 나치 공군으로 돌아가 연합군과 싸우는 대신, 알렉산더는 수용소로 옮겨진다.

 

그런데 1년 후, 수감자들을 상대로 잔혹한 생체 실험을 자행해 온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진 알렉산더. 멜리타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킨다. 나치군의 감시망을 피해 우회해 비행하던 멜리타의 전투기는 그러나 연합군의 비행 구역을 침범하면서 미군 전투기에 발각되었고, 결국 격추당한 멜리타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런데 멜리타 사후 그녀의 일기장을 통해 알려진 뜻밖의 사실이 있다. 발퀴레 작전을 앞두고 비행기로 폭탄을 운반해줄 수 있냐는 클라우스의 요청에 멜리타가 흔쾌히 응했다는 것이다. 만일 일기장의 내용이 실제로 진행되었다면 히틀러는 본인의 암살에 깊숙히 가담한 멜리타를 살려준 셈이다.

 

한편 무수히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운 좋게 살아남았던 히틀러는 1945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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