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예인을 한 명을 꼽아라 하면 의견이 분분할 것 같은데요. 이 기준을 기네스북으로 삼는다면 아마 이 한 사람이 뽑힐 겁니다.
1982년 발매한 앨범으로 세계에서 1억 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면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자 미국 밖에서 1억 장 이상 팔린 최초의 앨범으로 기록된 바로 그 주인공이죠. 대중 음악, 팝의 황제, 이 수식어가 붙는 바로 그 인물입니다. 마이클 잭슨.
1958년 아홉 형제 중에 7번째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5살의 나이에 데뷔를 해서 '잭슨 파이브'라는 그룹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죠. 당시 마이클 잭슨과 형제들은 아버지 밑에서 폭력을 동반한 아주 강도 높은 음악 훈련을 받으면서 전국 순회 공연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이 마이클과 형제들은 아버지를 절대로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조셉'이라고 부르면서 약간의 거리감을 두는 이런 느낌을 가졌었습니다.

마이클은 심지어 오프라 윈프쇼에서 8살 때부터 쉴 새 없이 일했다, 아버지만 보면 무서워서 토가 나왔다 라고 얘기하면서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심지어는 유언장에서도 아버지의 몫은 빼놓으면서 아버지 조 잭슨과 마이클과의 사이에 대한 평은 더욱 안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 후에도 내 아들이 죽어서 가치가 더 높아졌다고 말을 해서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이클 잭슨은 훗날 돈을 많이 번 뒤에 본인의 집을 '네버랜드'라는 이름을 지으면서 마치 어린 시절에 본인이 꿈꿨던 갖지 못했던 그 소망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실현했던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 팬들의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솔로 곡 벤(BEN) 역시 빌보드 핫100에 오르면서 오르면서 엄청난 기록을 올리자 잭슨 파이브는 음악적 욕심을 내게 됩니다. 그래서 소속사에 작곡과 작사는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했지만 끝내 거절을 당하기도 했죠. 그래서 잭슨 파이브는 모타운을 떠나서 당시 아주 핫했던 에픽 레코드와 계약을 해서 자유로운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마이클은 작곡가로서의 역량 또한 보여주기 시작하는데요. 그가 형제들과 작곡한 노래들, <Destiny>, <Shake your body> 은 연이어 빌보드에서 히트 행진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후 마이클 잭슨은 1978년, 영화 촬영 중 뛰어난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를 만나게 되고, 성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는 <Off the wall(오프 더 월)> 발매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그래미 석권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마이클은 그래미에서 딱 한 개의 상을 받아서 조금 아쉬운 성과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칼을 갈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나오게 된 앨범이 바로 문워크의 전설, <Thriller(스릴러)>입니. 이 앨범이 무려 6500만 장이 팔려 기네스북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지금도 등재가 되어 있죠. 그리고 또 의미 있었던 게 당시에 팽배했던 백인 위주의 팝 뮤직 산업에 흑인이 이렇게 돌풍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MTV에서도 흑인은 안 밀어주겠다던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팝의 황제로서 마이클 잭슨을 등장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내한하게 되는데요. 1996년 10월 13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1996년 당시 R석이 12만원을 호가했다고 하네요. 비싼 표 가격에도 객석은 만석이었습니다. 분단 국가라는 이유로 한국을 방문해서 평화 콘서트 컨으로 콘서트를 개최해서 상당한 감동을 주었죠. 한국에 상당히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이클은 또한 1998년 2월 25일에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도 직접 나타났었고요. 그래서 엄청난 화제이기도 했습니다. 또 행사장에서 한국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의상을 즐 입어서 또 한국에 대한 해정을 표현하기도 했죠.
그런데 예상 외로 90년대에 고비와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1993년 13살 소년 조단 챈들러를 성희롱 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아동 성추행범이라는 꼬리가 계속 그를 따라다니게 되고요. 20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61억에 합의를 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한 번 손상된 이미지는 계속 그를 괴롭히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마이클 잭슨의 사후에 그 당시 피해자로 마이클 잭슨을 고소했던 조단 챈들러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아버지와 함께 돈을 벌기 위해 벌였던 자작극이었다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많은 팬들에게 정말 충격적인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엇갈리는 행보 속에서도 음악만큼은 놓지 않았던 마이클 잭슨은 2009년 3월, <This is it>투어를 펼칠 것을 선언하고 공연에 박차를 가합니다. 티켓은 순식간에 동이 났고요. 50회 공연의 대장정을 위해 리허설을 실제 공연처럼 임하면서 준비에 열성을 다했는데요.
그런데 공연을 약 3주 앞둔 2009년 6월 25일, 뉴스는 마이클 잭슨의 심장마비 소식을 보도합니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서 마이클 잭슨이 타살된 거냐, 자살이냐, 온갖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을 부검했을 때 배 속에는 알약 몇 개만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굉장히 힘들게 그리고 외롭게 세상을 떠났던 마이클 잭슨.
하지만 세상은, 그리고 우리는 아직 마이클 잭슨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 번쯤은 여러분도 마이클 잭슨의 명곡 중에 딱 한 곡이라도 들어보면서 잠시 음악의 세계, 팝의 황제의 감성에 젖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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