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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문이 열려 승객과 승무원 346명이 사망한 항공사고

ˍ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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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지난 2023년 5월 26일,  제주에서 대구로 가던 아시아나항공 8124편 항공기가 착륙을 앞두고 250m 상공에서 비상문이 열린채 비행한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일부 승객의 경우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돌아갔을 만큼 큰 트라우마를 남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1974년, 3000m 상공에서 문이 열린 채 공포의 비행을 하는 또 다른 비행기가 있었다. 이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탑승객 346명 전원이 사망했다. 역사상 최초로 2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최악의 항공 사고로 기록되는데, 역사는 이를 이렇게 불렀다. '터키 항공 981편 추락사고'.

사고  일주일  전인 1974년 2월 24일에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 에서 찍힌 사진

그런데 이 모든 비극은 이륙 10분 만에 벌어졌다. 비행 시간만 7000시간이 넘는 베테랑 조종사 네자트 베르코즈는 1974년 3월 3일 프랑스 파리의 오를리 공항을 이륙해 영국 런던의 히스로 공항으로 향하는 터키항공 981편의 기장을 맡게 됐다.

 

당시 영국 항공사의 파업으로 터키항공의 승객들이 몰리면서 1등석을 제외한 전석이 매진된 상황이었다. 비행기는 승무원 11명, 승객 335명, 총 346명을 태운 채 이륙한다.

 

그런데 이륙 10분 후, 객실 바닥에 구멍이 뚫리면서 좌석에에 앉아있던 6명의 승객이 기체 밖으로 빨려 나갔고, 기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강한 바람이 휘몰아쳐 눈조차 뜨기 힘든 데다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온갖 물건들이 밖으로 휩쓸려 나갔다.

 

결국 프랑스 에르메농빌 숲에  추락하고 말았는데, 사고 후 추락까지 불과 77초 만에 무려 시속 800km의 엄청난 속도로 내리꽃힌 탓에 기체가 산산조각난 것은 물론 온전한 시신도 거의 없었다. 40구만 육안으로 신원 확인이 가능했고 188구는 지문, 치열, 옷과 소지품 등으로 신원을 알아내야 했으며 나머지 시신은 심하게 훼손돼 수습조차 못 했을 정도였다. 당시로서는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던 최악의 항공 사고였다.

 

그 즉시 사고 원인을 알아나기 위한 조사가 시작된다. 문제는 '문'에 있었다 비행 중 갑자기 화물칸의 문이 열리더니 아예 뜯겨 나갔고 객실과 화물칸 사이 기압 차이에 의해 객실 바닥이 뚫리면서 기체에 구멍이 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행기 조종에 필수적인 케이블이 절단되며 비상 착륙도 불가했다. 화물칸의 문은 추락 현장과 11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 사고를 둘러싼 가장 커다란 의문, 비행 중 화물칸의 문이 열린 이유는 무엇일까? 1960년대 후반 해외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비행기 제조사들 사이에 경쟁이 붙기 시작한다. 이에 뒤늦게 업계에 뛰어든 미국의 맥도넬 더글러스사는 타사 비행기와의 차별점을 찾아야 했는데, 당시 이 회사의 비행기 화물칸 문은 밖에서 안으로 열리는 구조였다. 그래야 비행 시 안과 밖의 기압 차를 잘 버텨 안전하기 때문.

 

그런데 그와 반대 방향으로 문을 만들 경우 문을 여닫기 위해 남겨둬야 했던 화물칸 안의 공간에 추가로 화물을 더 실을 수 있으므로 매출 증대를 노리는 항공사들이 선호하리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이에 맥도넬 더글라스 사는 화물칸 문이 바깥쪽으로 열리도록 설계한 비행기 DC-10을 제작했고, 우려되는 안전성을 보호하기 위해 문 자체에 이중 장금장치를 추가 설치해 판매한다.

 

그런데 문제의 잠금장치는 C자 모양의 고리로 문을 고정하고 이 고리가 이탈하지 않도록 사람이 레버를 잠그는 방식으로, 장치 자체의 결함 때문에 고리가 걸려 있지 않아도 힘을 주면 마치 레버가 잠긴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문이 열린 것과 다름없던 것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문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육안으로 최종 확인을 해야 했지만 당시 수하물 담당자였던 모하메드 마흐무디는 이 내용을 전혀 전달받지 못했고, 안내문은 영어로만 작성돼 있어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았던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즉, 이 사고는 예견된 재앙이었다.

 

그런데 사실 사고를 막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 소속으로 각종 항공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조사관 척 밀러는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가 일어나자 담당 조사관으로 파견된다. 그는 사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원인이 화물칸의 문 때문이었던 걸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2년 전인 1972년 똑같은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12 6월 12일 미국 디트로이트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는 아메리칸 항공 96편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아메리칸 항공 96편은 터키항공 981편과 똑같은 맥도넬 더글러스사의 DC-10 비행기로 이번에도 역시 이륙 5분 만에 화물칸의 문이 떨어져 나가면서 객실 바닥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

 

하지만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와 달리 객실 바닥에 설치된 조종 케이블이 절단되지 않아 조종사가 기체를 제어할 수 있었는데, 이에 비상 착륙에 성공하여 67명의 탑승객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의 담당 조사관이었던 척 밀러는 제조사인 맥도넬 더글라스 사에 화물칸에 잠금장치를 강화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그러나 이 권고를 깡그리 무시한 맥도넬 더글러스사. 그 결과 3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참사 터키항공 981 추락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법원은 맥도넬 더글러스사에 현재 우리 돈 5000억 원을 벌금으로 부과했고 유족들의 소송에서 연달아 패소하면서 700억 원을 배상으로 지급했다. 돈 때문에 비행기를 변형하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처로 모면했던 맥도넬 더글러스사는 결국 1997년 보잉사에 합병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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