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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세계적인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의 뒤에서 엄청난 재산을 빼돌리고 살인까지 계획했던 여자가 있었다

ˍ 2023.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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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1000명의 위인 중 한 사람이자 간디, 네로와 함께 인도의 운명을 바꾼 10명의 인물 중 하나로 꼽힌 세계적인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

 

400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하고 수천 개의 명상 센터를 설립한 그는 20세기 명상의 대중화와 부흥에 기여한 유일무이한 인물로서 지금까지도 현대인의 멘토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라즈니쉬를 조종하고 통제하고 지배했던 여자가 있었다. 오쇼 라즈니쉬의 뒤에서 힘을 휘두르며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던 냉혈한, '마 아난드 쉴라(Ma Anand Sheela)' 라는 여자였다.

오른쪽 여자가 마 아난드 쉴라

 

1981년에 미국 오리건주에 위치한 인구 2만 명의 작은 마을, 와스코 카운티에 수상한 사람들이 마을을 점거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도로를 가로막은 채 춤과 노래를 즐기는가 하면, 명상을 한다면서 격하게 몸을 흔들고 심지어 마구 싸우다가 갑자기 옷을 벗은 채 기도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들은 바로 오쇼 라즈니쉬와 그를 따르는 7000명의 추종자들이었다.

 

본래 인도에서 활동하던 라즈니쉬가 성에 대해 개방적 태도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미국으로 이주해 라즈니쉬푸람이라는 공동체 마을을 건설한 것이다. 그러자 원래 살고있던 주민들은 단체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항의하는 주민들을 막아선 사람은 바로 '마 아난드 쉴라'였다. 그녀는 라즈니쉬의 비서 겸 대변인으로 공식 석상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라즈니쉬를 대신하던 실질적 지도자였다. 주민들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전면에 나선 건 언제나 쉴라였는데, 그러던 중 마을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일주일 사이 무려 1000명이 넘는 주민이 단체로 식중독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범인은 바로 쉴라였다. 그녀가 직접 식중독을 유발하는 살모넬라균을 사들여 1만 명을 감염시킬 만큼의 양으로 키워낸 뒤 이후 네 곳의 레스토랑에 잠입해서 샐러드 바에 있는 음식에 살모넬라균을 살포했던 것이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생화학 테러였다. 쉴라는 왜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당시 쉴라는 마을을 장악하기 위해 얼마 후 열릴 지방선거에 라즈니쉬 공동체의 일원을 후보로 내보낸 상황이었다. 원주민의 투표율을 낮춰야 당선 가능성이 커지기에 투표장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집단 식중독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수천 명의 노숙자를 데려와 피선거인으로 등록을 시도하는 등 부정 선거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목적은 오직 돈에 있었다. 라즈니쉬 공동체의 세력이 커질수록 재산이 불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명상, 요가 사업으로 1억 달러, 현재 한화 가치로 약 4천억원 이상을 벌여들였고 라즈니쉬 개인 명의로 93대의 최고급 자동차가 있을 만큼 사치를 즐겼다.

 

하지만 이 돈의 진짜 주인은 쉴라였다. 그녀는 라즈니쉬 재단의 단독 운영자로 마음대로 돈을 빼돌리며 자산을 쌓아가고 있었는데, 그렇게 라즈니쉬를 허수아비로 세운 채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하며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갔다.  급기야 그녀는 살인까지 계획한다. 쉴라가 죽이고자 한 사람은 '찰스 터너'.

찰스 터너 검사

 

그는 오리곤주의 연방검사로로 집단 식중독 사태 이후 라즈니쉬 공동체와 쉴라의 뒤를 캐던 인물이었다. 쉴라는 주도면밀하게 찰스 터너 살인 작전을 기획하고, 암살단을 조직해 상세한 지시를 내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사이 쉴라는 스스로 또 다른 살인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 대상은 라즈니쉬의 주치의인 스와니 데바라즈.

 

라즈니쉬와 가깝게 지내며 쉴라의 험담을 전하는 데바라즈의 존재는 쉴라에게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였기 때문이었다. 쉴라는 데바라즈에게 독약을 탄 커피를 마시게 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데바라즈에게 약물을 과다 투여해 다시 한번 살인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입지를 방해하는 경우 가차 없이 살인을 불사할 만큼 극악무도했던 것이다. 덕분에 그녀의 왕국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갑자기 쉴라의 왕국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1985년, 공식적인 자리에서 쉴라를 헐뜯는 등 쉴라를 향한 라즈니쉬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도청 때문. 쉴라는 라즈니쉬의 모든 대화를 도청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모든 공동체 회원의 방에도 도청 장치를 설치하고, 이렇게 해서 얻어낸 정보를 바탕으로 라즈니쉬와 공동체 회원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지배했던 것이다.

 

급기야 쉴라는 거액의 비자금을 챙겨 공동체 마을을 빠져나간 뒤 아예 독일로 도망을 가버리는데, 이에 라즈니쉬는 쉴라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다. 그녀가 단독으로 식중독 테러, 살인 미수, 도청 등의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였다. 그후 경찰 수사 결과 식중독 테러에 사용된 살모넬라균을 배양한 연구실이 발견된 데 이어, 쉴라가 범행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무실에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혐의까지 추가되는 등 그녀의 악행이 낱낱이 밝혀진다.

 

그러자 쉴라는 침묵 대신 오히려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처해서 돈은 자기가 아니라 오쇼 라즈니쉬가 다 쓴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1985년 9월, 미국의 공조 요청으로 쉴라는 독일에서 체포된다. 재판 결과 쉴라의 지시로 살인 사건에 가담한 공모자들의 증언과 수천 개의 도청 테이프 등 증거를 확보함에 따라 20년 형의 유죄를 선고받게 된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의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그녀는 국가 간 비밀 협의에 따라 모범수로 분류되면서 39개월 만에 석방된다. 그사이 미국을 떠나 인도로 돌아갔던 오쇼 라즈니쉬는 1990년 58세의 나이에 심부전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1999년 새로 결혼한 남편을 따라 스위스에 정착한 쉴라는 현재 양로원을 운영하면서 지난 일에 대해 여전히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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